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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빈 칼럼] 권력은 나눌수록 커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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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힘은 숨기고 자중하는 모습을 보일 때 더 위협적이다. 비록 조폭 우두머리라도 함부로 주먹을 휘두르지 않는다. 꼭 써야 할 때 한방으로 적을 쓰러뜨리는 두목이라야 존경받는 법이다.

어쩌다 힘이 생겼다고 몇몇 집단의 요구와 바람을 등에 업고 조자룡 헌칼 쓰듯 한다면 그런 권력은 국민적 지지를 받기 어렵다.

그런데 한나라당은 과반수 1석이 모자라는 최대 정당이 된 후 맨먼저 힘을 발휘한 게 고작 교원정년 1년 연장이다. 말인즉 잘못된 정책의 환원이고 교사의 자존심 회복이라지만 교육 경쟁력과 교육 수요자들의 욕구를 외면한 과거 회귀적 다수당 횡포다.

*** 敎員정년 연장 다수당 횡포

권력의 남발과 질주에 넌더리를 낸 게 DJ정부의 개혁 졸속정책 아니었던가. 재벌은 악이다. 그래서 시작한 게 재벌개혁이었고 곧이어 나온 졸속 과감 실패작이 이른바 빅딜정책이었다.

자동차는 여기서 빼앗아 저리로 주고 반도체 사업은 어디로 합치고 석유화학은 이리저리 뭉치라고 권력의 칼을 휘두른 게 엊그제 일이다. 그러나 그 결과는 너무나 황당했다.

병원에서 의사들이 남겨먹는 약값을 빼앗아 환자에게 돌려주고 약물 오남용을 막자는 취지로 몇몇 시민단체들의 깃발 속에 발진한 게 의약분업이었지만 지금 우리에게 남은 것은 무엇인가.

몇몇 신문이 정부를 근거없이 매도하고 언론 사주들이 황제처럼 군림하니 언론은 개혁대상이라는 목소리가 터져나오면서 때맞춰 시작된 게 언론사 세무조사고 이른바 언론개혁이라는 구호 아니었던가.

DJ정부의 단순.졸속.과감 개혁정책은 두 개의 기둥이 떠받든 셈이다. 하나는 제왕적 권력이고 또하나는 개혁성향의 일부 단체 또는 여론을 등에 업는 포퓰리즘이다. 제왕적 권력이 있었기에 무모한 빅딜이 가능했고 재벌은 아무리 비틀어도 된다는 잠재된 여론이 있었기에 반(反)시장적 억지 편가르기가 가능했다고 본다.

권력화한 신문은 까부숴야 한다는 바람이 일자 제왕적 통치 기제(機制)인 국세청과 검찰이 나서지 않았던가. 민주적 절차와 시장경제논리를 무시한 단순.과격 개혁이 교육개혁, 의약분업, 빅딜 과정에서 판판이 깨지고 갈등만 증폭되니 반DJ정서는 확산될 수밖에 없었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민주당 총재직 사퇴는 이런 관점에서 잘된 권력분산형 선택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제왕적 통치에 대한 자기 반성 또는 포기라고 좋게 보고 싶다.

결과는 두고 볼 일이지만 지금의 선택은 과거 개혁 실패를 교훈삼아 국정의 장래를 책임지면서 훌륭한 대통령으로 기록되고 싶은 방향전환이라는 점에서 이를 밀어주고 북돋울 일이지 속셈이 뭔가하고 수군거릴 일은 아니라고 본다.

돈 1백원이 있다. 이 돈을 주머니 속에 넣어두면 언제나 1백원 가치를 지닐 수는 있다. 그러나 이 돈을 은행에 예치하면 은행에 1백원이 늘고 은행이 기업에 대출하면 기업 또한 1백원의 자산이 는다. 1백원이 3백원 이상의 가치로 확산된다.

LG투자증권이 영국에서 단돈 1파운드(1천8백50원)짜리 주식을 샀다가 4년 만에 무려 3백68만파운드(68억원)를 번 기적적 사례가 현실로 일어나고 있다. 1백원의 돈도 나누면 이처럼 거대한 부를 형성한다.

권력도 잘만 나누면 오히려 힘이 커진다. 권력은 움켜쥐면 쥘수록 약해진다는 사실을 우리는 역대정권에서, DJ개혁정책에서 줄곧 보고 있다. 대통령이 총재직을 떼고, 총리에게 더 많은 권한을 이양할 때 대통령의 권한은 더 커진다는 상식을 우리 위정자들은 아직도 모르고 있다.

*** 家臣정치 낳는 권력 집중

주룽지(朱鎔基)총리에게 더 많은 권력을 이양함으로써 장쩌민(江澤民)주석의 권한 강화가 이뤄지고 있는 중국 권력구조를 배울 필요가 있다. 북한의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권력이 제왕적 권력의 극치이기 때문에 북한에 대한 국제적 불안심리가 높아지는 것이다.

권력의 1인 집중이 가신정치를 낳고 현실검증을 거치지 않은 단순.과감 개혁노선이 난폭질주를 하며 대통령 아들의 위세가 하늘을 찌르는 해괴한 현상들이 거듭해 일어나고 있다.

金대통령이 제왕적 권력에서 보다 자유로우려면 여기서 한걸음 더 나가야 한다. 유능한 총리와 각료를 발탁해 권한을 대폭 위임해야 한다. 권력이양과 분산이 가신정치의 폐를 막고 의혹과 불신에 싸인 권력기관의 적폐를 일소하는 첩경이 될 수 있다.

또 그것이 3金식 제왕적 정치를 스스로 청산하면서 새 정치 풍토를 도입하는 소중한 업적으로 기록될 것이다.

권영빈 <중앙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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