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가지 경전을 한 글자로 줄이면 心”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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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호 22면

선각 스님이 6일 대장경 천년 행사를 설명하고 있다. 신동연 기자

삼재(三災: 화재·풍재·수재)가 들지 않는다는 천혜의 요새 경남 합천의 가야산 해인사. 임진왜란 때도 왜구들의 발길을 물리친 곳이다. 덕택에 장경각에 봉안된 세계문화유산 팔만대장경은 온전히 보존될 수 있었다. 해인사는 우리나라 3대 사찰로 화엄종의 근본도량이기도 하다.

내년 9월 ‘대장경 천년 축제’ 여는 해인사 주지 선각 스님

송림이 우거진 깊은 계곡을 비켜선 자리에는 해동 제일의 지덕(地德)을 자랑하는 도량이 자리 잡았다. 바위들이 불꽃같이 치솟아 오른 석화성(石火星)으로 이름난 가야산(1430m)이지만 해인사 경내에서는 바위산이 보이지 않는다.

6일 저녁 가야산의 어스름이 배어드는 선열당(禪悅堂)에서 선각 주지스님을 만났다. 스님은 3월 하순 돌계단에서 넘어져 무릎에 6㎝의 상처가 나 6개월 진단을 받았다. 스님은 거동이 불편해 언론 인터뷰를 사양해왔다고 한다.

“녹인(綠印)이라는 차입니다. 선방에서만 줄곧 살아서 차를 잘 모르지요. 아직도 차 우려내고 따라주는 팽주 노릇이 어색합니다.”
스님의 쨍쨍한 선기(禪氣)를 머금은 차맛이 새뜻하다. 부슬비가 내리는 날씨에 다향이 은은하게 퍼지는 가운데 선각 스님을 90분간 만났다. 인터뷰 내내 바람 따라 춤추는 풍경 소리가 산사의 적막을 깨고 있었다. 다음은 선각 스님과의 일문일답 요지. (괄호 안의 ※표시는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설명)

-내년에 있을 ‘대장경 천년 세계문화축전’을 준비하느라 바쁘시죠.
“경상남도와 합천군, 해인사가 공동으로 내년 9월에 45일간 세계문화축전을 엽니다. ‘대장경 천년’은 세계적 경사입니다. 두 개의 국제 행사를 개최하는데, 팔만대장경을 중심으로 하는 세계문화축전은 해인사 입구인 가야면 각사마을에서 펼쳐지고 부대행사로 제1회 해인 국제비엔날레가 열립니다. 세계문화축전은 목판대장경이 지닌 세계적 가치를 재조명하는 행사입니다. 한국의 문화 선진 위상을 정립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해인 국제비엔날레는 해인사가 주관해 부속 암자(25곳) 가운데 13~14곳을 갤러리 삼아 여는 국제 미술제입니다. 한국 불교가 가진 독특한 수행 문화인 화두참선을 알리기 위해 문화 포교의 일환으로 가장 대중적인 장르인 미술을 택하게 됐습니다.”

-‘선(禪)과 치유(治癒)’를 테마로 정했다지요. 팔만대장경은 교학의 대표적 유산인데 언뜻 참선과는 무관해 보이는데요.
“성철 스님은 팔만대장경을 한 글자로 표현하면 마음 심(心)자라고 하셨어요. 1500가지의 경전은 사람마다 다른 근기에 맞게 혹은 눈높이에 맞게 방편으로 한 것입니다. 결국 참선에 다다르는 경지와 같은 겁니다. 한국 불교의 특징은 선교(禪敎)를 일치시키는 이른바 통불교지요. 팔만대장경은 곧 참선인 거고 그 참선을 통해 인류가 당면한 문제들을 치유할 수 있다고 봅니다.”

-비엔날레 말고 팔만대장경과 관련한 다른 문화 콘텐트 활용 방안이 있습니까.
“주지 소임을 맡게 되면서 홍보미디어국을 만들었습니다. 영상물 제작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세련된 문화포교 방식이지요. 또한 ‘8만 지킴이’ 행사를 하려고 합니다. ‘한 가족 한 경판 인연 맺기’를 통해서입니다. 몸소 각수장이가 돼서 좋아하는 경전 구절을 새기고 집에 소장하는 생활 속의 콘텐트 활용 방안이지요.”(※해인사에서는 전에도 동판 대장경 사업을 한 적이 있었다. 성과가 컸던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목판 대장경 사업은 참가자 스스로 목판을 새겨보는 체험 행사여서 호응도가 높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산화 작업을 해온 고려대장경연구소(서울)의 모태가 해인사인데요.
“물론입니다. 해인사가 없었으면 고려대장경연구소가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한 식구였고 머잖아 통합해야 옳습니다. 대승적으로 볼 때 고려대장경연구소가 세계문화유산이 있는 이곳 해인사에 소속될 때 그 가치가 더욱 빛납니다. 문화사업도 훨씬 용이하고요. 좀 복잡한 이해관계가 있어서 미뤄지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하나가 될 겁니다. 연구소가 해인사로 통합되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지원을 다할 생각입니다.”(※선각 스님은 선객답게 화법이 직선적이었다. 통합 과정에서 있었던 마찰과 갈등을 하나하나 거론하면서 통합 원칙을 강조했다)

-부처님 오신 날이 다가옵니다. 세종시 쟁점, 4대 강 사업, 천안함 사건 그리고 봉은사 직영 논란 같은 현안들이 산적해 있습니다. 갈등을 푸는 청량 법어 한 말씀을 부탁합니다.
“우리 절의 퇴설당에 주석하고 계신 법전 종정 스님께서 ‘무위진인(無位眞人)을 이룩해 모든 중생이 부처로 태어나자’는 초파일 법어를 내리셨어요. 걸림 없는 참사람이 되면 소통과 화합쯤은 문제가 아니겠지요. 하지만 실제로는 소통이 어렵지요. 공심(公心)을 가져야 합니다. 소통과 화합이 안 되는 건 나 자신이 꽉 차 있기 때문이지요. 모두가 똑똑하고 정보가 넘쳐서 탈이지요. 나부터 가슴 한 귀퉁이를 비워둬야 합니다. 비움의 미학이 있어야 또 다른 나인 다른 사람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축착합착’이라는 말씀이 있어요. 딴 몸이지만 댓돌 맷돌 맞듯 해야 콩을 갈 수가 있지요. 서로 다르다고 겉돌면 제 기능을 할 수가 없습니다.”


선각 스님은
1984년 자운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94년 일타 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받았다. 85년 해인총림 소림선원에서 수선안거를 한 이래 40안거를 수행했다. 해인총림 선원장, 종정예경실장, 중앙종회 의원(제12~14대)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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