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사태 ‘시가전’ 양상 … 5명 사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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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태국 군인들이 14일 방콕 도심에서 반정부 시위대를 체포하고 있다. 이날 군은 물대포와 최루탄·고무탄 등을 쏘며 반정부 시위대의 강제 해산을 시도했다. [방콕 AP=연합뉴스]

태국 군경이 14일 방콕 도심에서 반정부 시위대에 발포해 5명이 숨지고 40여 명이 다쳤다. 시위대의 최고 강경파 지도자가 의문의 저격을 받고 쓰러진 지 하루 만이다. 취재 기자들의 피해도 잇따르고 있다. ‘프랑스 24’ 방송국 소속 캐나다인 기자 1명이 총상을 입고 병원으로 후송됐다. 태국의 신문사 사진 기자와 TV 카메라 기자 각 1명도 총상을 입었다고 AFP통신 등이 전했다.

3월 중순 정부 해산을 요구하며 시위를 시작한 이래 방콕에서만 최소 35명이 숨지고 1000명이 다쳤다. ‘레드셔츠’로 불리는 시위대는 아피싯 웨차치와 총리 정부가 정통성이 없는 만큼 의회 해산과 조기 총선을 요구한다. 아피싯 정부가 선거에 의해 선출된 것이 아니라 2008년 군사 쿠데타에 이은 의회 표결로 정권을 잡았기 때문이다.

양측은 이날 방콕의 쇼핑 중심지인 라차프라송 거리의 룸피니 야시장 인근에서 정면 충돌했다. 군경은 물대포와 최루탄·고무탄을 쏘며 시위대 해산을 시도했다. 시위대는 화염병과 돌을 던지고 새총을 쏘며 맞섰다. 군경의 물대포와 버스 등을 탈취해 불을 지르기도 했다. 삽시간에 거리가 검은 연기에 뒤덮이며 아수라장이 됐다고 태국 영자지 네이션은 보도했다. 시위대 일부는 25명이 숨진 지난달 10일 충돌 때 군경으로부터 빼앗은 기관총과 자동소총 등으로 무장했다. 군경은 시위대의 격렬한 저항을 받자 시위대를 향해 발포하고, 허공에 공포를 쐈다. 피해자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시위대가 점거하고 있는 도심 지역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시위에 참가한 나타웃 사이콰르는 “아피싯이 이미 내전을 시작했다”며 “아피싯이 휴전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고 말했다.

당초 군경은 강제 해산보다는 시위대의 근거지를 봉쇄하는 작전을 폈다. 13일 오후 6시를 기해 6개 진압부대 병력이 시위대가 점거하고 있는 라차프라송으로 연결되는 거리를 사방에서 차단했다. 검문소가 설치돼 시위 동조자들의 합류를 막았다. 지역 주민만 통행이 허용됐다. 인근 지역에 단전·단수 조치가 내려졌고, 일부 대중교통과 휴대전화 서비스도 차단됐다. 진압 병력의 압박 수위가 높아지자, 이 지역 일대의 기업들은 임시 휴업에 들어갔다. 인접 지역에 위치한 미국·영국·네덜란드 대사관도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문을 닫았다.

프라윗 옹수온 국방장관은 “봉쇄 작전은 시위대가 다시 정부와의 협상 테이블로 나오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난주 아피싯 총리는 11월 조기 총선안을 제시했지만, 시위대가 추가 요구사항을 들고 나오면서 양측의 협상은 교착상태에 빠져 있다. 군 대변인은 “시위대에 대한 강제해산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군경이 시위대가 점거한 도심 주변을 장악하는 과정에서 유혈 충돌이 벌어졌다. 군은 실탄을 발포하며 사실상 시위대에 대한 강제 해산에 들어갔다. 군 대변인은 앞서 “시위대가 총을 발사할 경우 군경도 자위권 차원에서 실탄 사용을 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13일 저녁 미국 뉴욕 타임스 기자와 인터뷰를 하던 중 머리에 총격을 받은 카티야 사와스디폴 전 특전사 사령관은 혼수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탁신 친나왓 전 태국 총리를 지지하는 ‘반독재민주통일전선(UDD)’ 지도자 중 한 명인 자투폰 프롬판은 “아피싯 총리가 UDD 지도자 저격 사건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반정부 시위가 두 달째 이어지면서 태국 경제는 끝없이 곤두박질치고 있다. 태국상공회의소대학(UTCC)은 반정부 시위가 6월 중순까지 계속되면 경제손실 규모가 1400억 바트(약 4조9100억원)에 달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홍콩=정용환 특파원, 서울=김한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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