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운용 국기원장 왜 사퇴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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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국내 스포츠계 최고 거물인 김운용 대한체육회장이 지난 15일 국기원장 사퇴 의사를 밝혔다.

국기원은 한해 승단비로만 대략 40억~50억원을 벌어들일 만큼 재정이 풍부한 곳이다. "김회장이 다른 자리는 다 내놓아도 '돈줄'이 되는 국기원은 꽉 잡을 것"이라는 태권도인들의 예상을 정면으로 뒤집은 것이다.

이는 김회장이 단순히 단체장 자리 하나를 내놓은 게 아니라 국내 태권도계에서 완전히 손을 뗀다는 의미다. 무엇이 김회장을 이토록 궁지로 몰고 갔을까.

◇ 다시 불거진 편파 판정 시비

이달 초 열린 제주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는 '범태권도 바로세우기 개혁 모임'으로 불리는 '김회장 반대파'의 반발을 더욱 키웠다.

경희대.용인대 교수와 졸업생들이 주축을 이룬 개혁 모임측은 당시 이 두 대학 출신 선수들이 불이익을 당해 금메달을 따지 못한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 16일부터 민주당 당사 앞에서 무기한 장기농성에 들어가겠다고 으름장을 놓자 정치적 부담까지 겹치게 된 김회장이 백기 항복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 김회장 측근과의 미묘한 관계

개혁세력측이 처음부터 '김회장 퇴진'을 요구하진 않았다.이들의 주 목표는 부정인사로 도마 위에 오른 L.S씨 등 김회장 측근을 퇴출시키는 것이었다. 따라서 L씨와 S씨를 해임시키면 내분은 잠재울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김회장은 자신이 물러나 주변을 의아하게 만들고 있다.

태권도계의 한 관계자는 "L.S씨가 현재 승부조작 등의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이런 와중에 김회장마저 가장 측근인 이 두 사람을 쫓아낸다면 두 사람은 오히려 김회장에게 해를 끼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대한태권도협회 이승완 부회장은 "이미 L씨와 S씨는 김회장이 제어할 수 없을 만큼 태권도계 영향력이 커졌다. 김회장은 두 사람이 스스로 물러나기를 바랐지만 버티고 있자 할 수 없이 스스로 용퇴를 결심한 것"이라고 전했다.

최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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