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걸 교수의 공공디자인 클리닉 <23> 거리환경, 차별 없는 포용적 공간으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0면

우리나라 전체 인구 중 65세 이상의 노인은 지난 30년 동안 급증하여 현재 9%에 달합니다. 등록 장애인 수도 인구의 4%인 200만여 명에 이릅니다. 그러나 도시환경은 성인 남성을 기준으로 계획되고 디자인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노약자와 장애인에 대한 소외와 차별은 심화되고 있습니다. 맨홀 뚜껑과 가로수 보호덮개는 휠체어의 진행을 어렵게 합니다. 울퉁불퉁한 바닥면은 노약자와 일반시민의 보행을 불편하게 합니다. 분전함, 가로등, 공중전화 부스 등 거리에 산재해 있는 시설물과 키 낮은 지주사인 등은 시각장애인에게 예측 불가능한 위험요소입니다. 지상에 돌출한 환기구들이 보도를 침범하여 부딪쳐 넘어지는 등 안전사고의 요인이 됩니다(사진1).

‘교통 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과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 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은 공공환경 조성 시 보행 약자를 고려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건물이나 시설에 관한 조항이 대부분입니다. 거리환경에 관한 사항은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블록에만 국한되어 있습니다. 모든 보도는 차별 없는 무장애(barrier-free) 공간이 되어야 합니다. 연령, 성별, 장애 유형과 특성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통합과 조정이 필요합니다.

디자이너 이지영은 보행 장애의 다양한 상황을 고려해 신체조건에 관계없이 누구나 안심하고 걸을 수 있는 포용적 거리환경을 제안합니다. 보도상 각종 시설물이 위치한 부분을 별도로 구획함으로써 보행전용공간을 확보했습니다. 평탄하고 곧은 보행로는 일정 폭을 유지하도록 했습니다. 가로수를 포함한 시설물 구역은 녹지로 계획하여 두 영역이 시각적 대비를 이루도록 합니다. 보행전용공간이 녹지와 확연히 구분되면 보행 기준선이 명료해지기 때문에 눈이 나쁜 사람도 안전하게 걸을 수 있습니다. 바닥면은 휠체어 이용을 어렵게 하는 단차와 굴곡을 없애고, 단위 면적이 큰 포장재를 적용하여 평활한 면을 이루도록 합니다. 또 시각장애인이 발 촉감으로 두 영역 간의 경계를 쉽게 인식하도록 상대적으로 표면이 거친 포장재를 적용했습니다(사진2).

거리는 도시의 본원적인 공간입니다. 모두가 만족하는 거리환경이 되도록 거리는 시민 개개인의 신체적 다양성을 수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다수’에 맞추어진 설계가 아니라 ‘모두’의 다면적인 요구와 욕구에 대응함으로써 차별과 장애가 없는 포용적 도시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권영걸 서울대 디자인학부 교수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