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민호 기자의 레저 터치] 오은선의 2010년 네팔, 나의 2004년 네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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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호 기자

오은선 대장이 여성 최초로 히말라야 14좌를 완등했다. 국내는 물론 해외 언론까지 연일 관련 기사를 쏟아 냈다.

그럼에도 보도되지 않은 내용이 더 많다. 개중 하나가 유독 눈에 밟힌다. 안나푸르나에서 내려온 오 대장이 네팔 수도 카트만두로 이동한 다음의 일정이다. 그 일정이 전혀 엉뚱한 이유로 차질을 빚었다. 네팔 공산주의자의 파업으로 도시가 마비됐고, 이 때문에 오 대장이 호텔 방에서 꼼짝도 못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네팔을 가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네팔 공산주의자, 정확히 말해 네팔 마오이스트(Maoist)가 누구인지, 그리고 그들의 파업이 무엇을 뜻하는지 말이다. 그러니까 2004년 가을이었다. 오 대장처럼 안나푸르나 정상을 밟지는 못하고 안나푸르나를 한참 아래서 올려다보는 취재를 갔을 때였다.

카트만두에서 히말라야 발밑의 레저도시 포카라를 가는 길이었다. 원래는 경비행기로 이동할 계획이었는데 파업 사태로 버스를 타야 한다고 현지 코디네이터가 전했다. 그때만 해도 우리나라의 지하철 파업 모양 운행 중단 정도로만 생각했다.

카트만두를 나와 서너 시간쯤 흘렀을까. 고개 하나를 또 넘는 참이었다. 길이 막혀 있었다. 타이어가 시커먼 연기를 내뿜으며 활활 타올랐고, 거대한 통나무가 길을 가로막았다. 우리 일행은 버스에서 강제로 내려졌으며, 그들은 험악한 인상으로 우리를 신문했다.

“네팔을 취재하기 위해 방문한 한국 기자”라며 코디네이터가 네팔어로 말했다. 그러자 한 남자가 불쑥 내 신분증을 보자고 했다. 주섬주섬 지갑을 뒤지니 중앙일보 출입증이 나왔다. 사진은 이미 잔뜩 바래 식별이 불가능했고, 한글로 찍힌 ‘중앙일보’ 네 글자만 또렷했다.

“중앙일보? 나 중앙일보 알아요.” 그 남자가 갑자기 한국말을 했다. 그는 한국 이주노동자 출신이었다. 한국에서 3년을 살았단다. 순박한 웃음을 지으며 그가 길을 터 줬고, 코디네이터가 미리 챙겨 둔 응급약을 선물로 줬다.

네팔 마오이스트는 산악지대에 산다. 그들은 히말라야 로지를 한밤에 습격해 외국인 트레커의 식량과 달러를 빼앗는다. 하나 그들이 가장 감사하는 건 약이다. 하여 네팔을 여행하려면 상납용 약을 준비해야 한다. 네팔 청년은 대부분 실업자다. 도시의 청년 백수와 산속의 마오이스트가 수시로 작당해 시위를 벌인다. 파업은 기본이고 외국인을 두어 달 감금하기도 하고 심하면 정부기관을 타격한다.

겨우 고개를 내려온 다음, 별안간 식은땀 한 줄기가 흘러내렸다. 떨리는 목소리로 겨우 입을 열었다.

“아까 그 이주노동자 말이야. 만약에 그 양반이 한국에서 월급을 제대로 못 받았으면 우린 어떻게 됐을까. 한국에서 손가락이라도 잘렸으면?”

앞자리 코디네이터가 귀신이라도 본 듯한 얼굴로 돌아봤다. 둘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네팔엔 산만 있는 게 아니다. 사람이 살고 있다.

손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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