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논산의 한 수박 농장에서 이호정 이마트 수박 담당 바이어(구매 담당자)가 당도를 측정하기 위해 수박을 깨보고있다. 이마트는 이상 저온으로 냉해가 생기자 당도 검사를 강화했다. [이마트 제공]
같은 날 경북 상주군 사벌면 두릉리. 이 마을 27가구의 작목반 회장인 박철기(60)씨는 애꿎은 담배만 피워 물었다. 제대로 된 열매를 맺도록 수정된 꽃 수가 예년의 20~25%에 불과하기 때문. 800주의 배나무를 가진 그는 “올해는 지난해의 30%나 거두면 다행”이라고 말했다. 같은 작목반 소속 최명달(52)씨는 “요즘은 사람들끼리 모였다 하면 화가 나서 술만 마시고 있다”며 “관공서에서는 실태조사를 한다지만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며 말문을 닫았다. 이 마을 작목반은 지난해 20억원대 매출을 올렸지만 올해는 10억원에도 못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올봄의 이상 저온이 농민들의 시름을 깊게 하고 있다. 최근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도시민들은 냉해의 피해를 실감하지 못하지만, 과수 농가에선 올해 내내 피해가 지속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피해는 특히 복숭아나 자두 같은 여름 과일이 심각하다. 추위에 약한 데다 개화기가 빨라 꽃이 더 많이 죽었기 때문이다. 복숭아 산지로 유명한 충북 음성 감곡농협의 김윤구 과장은 “지난해엔 지역 내 750여 농가가 300억원대 매출을 올렸는데, 올핸 그 절반도 안 될 것 같다”며 “지역 농가의 대부분이 크고 작은 냉해를 입었다”고 걱정했다. 롯데마트는 올해 복숭아·자두·배의 수확량이 30~40%씩 줄고, 사과는 10~20%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냉해를 입은 나무와 과일을 살리려는 농민들의 노력은 눈물겹다. 충남 논산시 광성면의 팜슨 수박 농장은 비닐하우스에 보온 덮개를 3중으로 씌웠다. 비닐하우스 안에는 열풍기를 설치해 놓고 수시로 뜨거운 바람을 보냈다.
충남 예산군 오가면의 한 사과농장은 냉해를 입은 사과나무에 해조류와 미나리·쑥 등을 갈아 만든 즙을 수시로 주고 있다. 일종의 ‘보약’을 먹이는 셈이다. 바로 옆 농장은 올봄 냉해 때 영상 3도 이하로 기온이 내려가면 팬을 돌려 서리를 날려보내는 장치까지 설치했으나 가지 끝마다 달린 5~6개의 꽃 중 3~4개씩은 이미 말라버린 상태다. 이 농장의 한완규 작목반장은 “올핸 꽃 피는 시기가 늦어져 수확량이 줄어드는 것은 물론, 그나마 맺힌 열매도 모양이 일그러진 기형이 많을 것 같다”고 말했다.
과일 당도 검사도 강화했다. 이마트는 지난해까지 수박 물량의 60~70%만 골라 당도를 쟀지만, 올해는 당도 측정기를 사용해 모든 수박의 당도를 검사하기로 했다. 이 회사 이호정 바이어는 “비닐하우스 한 동에서 나오는 500여 통의 수박 중 300통 정도만 품질 기준을 통과한다”고 말했다.
롯데마트는 미리 과일값의 일부를 주는 선도금 규모를 지난해 130억원에서 올해 200억원으로 늘려 잡았다. 기존에 거래를 하지 않던 지역이나 농가로 거래를 확대했다. 홈플러스는 과일 농가 중 피해를 덜 본 농가를 대상으로 계약재배 면적을 늘리고 있다.
유통업체마다 피해 농가를 돕기 위한 행사도 기획 중이다. 롯데마트 신경환 과일담당 MD는 “냉해로 모양이 일그러진 기형 과일을 사들여 ‘주스용 과일전’ ‘못난이 과일전’ 등을 열 계획”이라며 “과일 농가 보호를 위한 대책을 추가로 내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홈플러스도 영농조합 등을 거치지 않고 농가와 직거래해 중간 유통마진(10% 정도)을 농가에 돌려줄 계획이다. 하지만 이 같은 조치들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대한상공회의소 유통물류진흥원 염민선 박사는 “올해 냉해 피해가 봄 한철로 그치는 일회성이 아니어서 걱정”이라고 말했다.
음성·충주(충북), 논산·예산(충남), 상주(경북)= 이수기·김기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