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알아보는 공부 재밌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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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부고속도로 증평IC에서 나와 국도로 한참 달렸다. 논두렁길로 들어가자 단층건물이 나온다. 충북 괴산군 칠성초등학교 외사분교 얘기다. 교문에는 "경축, 제12회 한국학생과학탐구올림픽 전국동아리활동 발표대회 금상 수상"이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고, 현관에는 '즐거운 학교'라는 문구가 붙어 있다.

외사분교에는 각 학년별로 '1반'만이 있다. 1학년 1반, 2학년 1반 이런 식이다. 그나마도 1.4학년, 2.5학년, 3.6학년이 한 교실에서 수업을 받는다. 과학탐구올림픽에서 연속 2년간 금상을 수상한 자연탐험대를 이끈 박세희(26.여) 교사는 1.4학년 담임이다.

"얘들아 오늘은 이 나뭇잎을 색연필로 종이에 긁어 탁본을 만들 거야. 물감칠 해 찍기도 할 거고. 나뭇잎 탁본으로 저번에 다녀온 동물원의 동물들을 만들어 보자."

특별활동이 있는 11일 목요일 오후. 자연탐험대 학생들이 모였다. 이틀째 비가 내리는 등 날이 궂어 교실에서 수업을 하기로 했다. 학생들이 운동장에 떨어진 낙엽을 듬뿍 주워왔다. 단풍이 끝물이다.

"나뭇잎 앞면으로 찍으면 잘 찍힐까? 뒷면으로 찍으면 잘 찍힐까?"

"뒷면이요."

"그래? 한 번 해 보자"

박 선생은 답을 먼저 알려주는 법이 없다.

아이들이 얼른 책상에 둘러앉아, 바닥아 깔아둔 돗자리에 둘러 앉아 저마다 나뭇잎을 맞춰 동물 모양을 만든다.

열 명도 안 되는 학생들. 교사가 한 명 한 명 세심하게 지도할 수 있다. 집안 사정도 소상하다. 학년이 다른 아이들끼리 "언니", "형"하며 서로 보고 배운다.

이번에 학교 대표로 서울에 가서 '우리지역 생태탐구 활동'을 발표하고 돌아온 6학년 김정환(13) 군. "원래 과학은 별로였어요. 체육이 제일 좋아요. 그런데 자꾸 들에 나가 직접 물고기 잡아 표본도 만들고 하다보니 좋아졌어요"란다.

괴산군 칠성면에서 태어나 유치원도 외사초교 부설 유치원을 나왔다. 중학교는 칠성중학교로 갈 예정. 올해만 해도 6학년 학생 서너 명이 서울로 전학갔다고. 그러나 정환이는 "여기서 사는 게 더 나아요. 서울가면 재미 없을 거 같아요"한다.

정환이와 함께 학교 대표로 서울에 다녀왔던 김한월(13) 양. "서울같은 도시는 뭐든지 크고 많아 좋아보이기도 하지만 지금은 여기가 더 좋아요"란다. 장래희망은 초등학교 선생님. "TV같은데 초등학생들이 선행학습하고 경쟁 심한 거 나와요. 그렇게 하면 공부는 더 잘할 지 몰라도 힘들고 지칠 것 같아요"란다. 한월이는 오후 세 시쯤 수업이 끝나면 속셈학원에서 공부를 좀더 하고 저녁에는 TV를 보기도, 친구들과 바깥에서 뛰놀기도 한다고. 과학반 다른 아이들이 한월이를 "누나, 누나" 하고 따른다. 한월이는 "학년 다른 애들끼리 한 반에서 수업하는 것도 재밌어요"라며 웃는다.

단풍잎 탁본을 사자의 머리로 만드는 등 아이들이 저마다 동물을 한 마리씩 만들었다.

"얘들아 이젠 자기가 만든 동물이 쌍떡잎 식물 몇 장과 외떡잎 식물 몇 장으로 이뤄졌는지, 그물맥인지 나란히맥인지 얘기해줘."

"대나무는 나무일까? 풀일까? 나무라고 생각하는 사람 손들어봐. 왜 그렇게 생각하지?"

"이름이 나무니까요."

"크니까요."

"죽순이 봄에 나오지? 그게 나와서 자라는 게 1년이야? 여러해야?"

"1년이요."

"나무는 여러해살이야? 한해살이야?"

"여러해살이."

"나무는 나이테가 있어? 없어?"

"있어요. 그럼 대풀이네."

아이들은 "선생님 수업은 직접 뭔가 해보고, 밖에 나가는 게 많아 좋아요"라고 입을 모은다. 이번 대회에서도 아이들이 직접 만든 물고기 표본 등을 들고 갔다.

박세희 선생은 충북 증평 태생으로 청주에서 고교, 대학을 졸업했다. "아이들이랑 오후에 바깥에 나가는 걸 좋아했는데, 본교 과학담당 선생님께서 이왕이면 본격적으로 특별활동을 해보지 않겠느냐고 제안을 하셨어요. 제 전공을 살려 과학반을 시작하게 된 거죠."

교대에서 과학을 전공했지만 농촌에서 태어나 자란 아이들보다 모르는 물고기, 식물도 많았다. 학생들과 함께 답을 찾아나갔고, 궁금해 하는 것들은 직접 도감류를 찾아보도록 했다.

그러나 이 신참 교사, 의욕과 애착만큼 걱정도 많다.

"첫 부임지가 이곳이에요. 서로 다른 학년을 한 반에 모아놓고 수업을 하는 게 처음엔 힘들었는데 학생 수가 적어 세세히 돌볼 수 있어 좋은 점도 있어요. 문제라면, 1학년엔 남학생만 두 명인데 그나마 한 아이가 수두에 걸려 결석중이라 함께 하는 학습활동이 어렵다는 것 등이죠"

내년 2월에 정년퇴임하는 이문영(61) 분교장도 마찬가지다. 전교생 27명의 외사분교. 몇 년째 폐교 얘기가 나오면서 시설 지원도 사실상 끊겼다.

"학생수가 적으니 여럿이 경쟁하면서 사고력, 창의력을 키우기가 어려운 점도 있습니다. 체육 수업을 할라치면 수가 적어 게임이 안 되고, 음악 수업을 하려고 하면 화음을 낼 수 없고요. 이런 환경에서 박선생과 과학반 학생들이 애썼지요. 방학도 없이 아이들과 직접 물에 들어가 수생 생물 관찰도 하고. 월급 털어 아이들 밥 사줘가면서 특별활동 하고."

그러나 낙후된 설비, 날로 줄어가는 학생 등 열악한 환경만이 이곳의 전부는 아니다. 이번 대회에서 탐험대는 학교 안 생태지도 작성, 연못가꾸기, 주변 괴산댐의 수생생물.수질 조사, 원흥이 방죽 탐사 등의 활동으로 지역성, 현장감, 자료수집, 자발적 참여도 등에서 호평을 받았다. 전국 400여개 초등학교 중 선발된 20여 지역대표학교들과 겨뤄 2년 연속 금상을 받은 비결이다.

괴산=권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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