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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잡초 축구 히딩크호서 만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3면

거스 히딩크 감독이 이끄는 한국축구대표팀에서 양쪽 윙백은 수비 포메이션인 스리백 시스템의 성공 여부를 가리는 중요한 자리다.

히딩크는 이 포지션을 소화할 선수를 찾는데 고심해 왔고 마침내 적임자가 나타났다. 바로 이을용(26.부천 SK)이다.

이을용은 세네갈.크로아티아와의 세차례 평가전에서 윙백이 어떤 자리인지를 보여줬다. 왼쪽 윙백으로 기용된 이선수는 상대의 측면돌파를 효과적으로 차단하는 한편 재빨리 공격으로 이어줘 역습으로 연결했다.

축구협회 김광명 기술위원은 "이을용은 시야가 넓고 공격의 템포와 방향 조절 능력이 탁월해 베스트11 포함이 확실시된다"고 말했다.

프로축구에서도 이선수의 활약은 돋보였다. 주전 수비수 이임생의 잦은 부상으로 수비가 불안한 부천에서 수비로 출전, 리그 막판 12경기 무패행진을 이끌었고, 공격에서도 2골.1도움까지 기록했다.

지금은 대표팀과 소속팀에서 없어서는 안될 선수가 됐지만 불과 6년 전에는 축구를 그만두려 했었다. 1994년 강릉상고를 졸업한 뒤 가정형편상 대학 진학을 포기했고, 데려가겠다는 프로팀도 없어 축구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이때 이선수를 유심히 지켜봐온 철도청(현 한국철도) 이현창 감독이 이선수의 축구인생을 이어줬다. 이감독은 이선수가 대학 출신이 대부분인 철도청에서 혹시 '왕따'가 되지나 않을까 걱정했지만 워낙 성격이 좋아 선배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했다고 했다.

아마추어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이선수는 98년 부천 구단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지만 "나를 살려준 이감독과 선배형들 곁을 떠날 수 없다"며 거절했다. 그러나 이감독이 며칠간을 설득해 이을용은 눈물을 머금고 프로행을 결심했다.

이현창 감독은 "을용이는 어찌나 심성이 고운지 몸이 아파도 팀에 누가 될까봐 말을 하지 않고 뛸 정도"라면서 "요즘도 가끔씩 안부전화를 잊지 않고,인삼진액 같은 선물도 보낸다"고 했다.

철도청에서 월 80만~90만원씩 받으며 '살기 위해' 뛰던 이을용은 이제 억대 연봉을 받는 스타 선수다. 그러나 그에게선 '스타 냄새'가 나지 않는다. 축구를 포기할 뻔하다 지금의 위치까지 오른 건 아마도 그가 '사람 냄새' 나는 선수이기 때문인지 모른다.

전진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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