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연의 필모그래피를 되짚어 보면 이 사실은 금세 분명해진다. 금방이라도 옷에서 땟국물이 번져 나올 듯한 시골 소녀(‘내 마음의 풍금’)와 아이에게 약 든 우유를 타 먹이고 애인을 만나러 가는 불륜녀(‘해피 엔드’)를 같은 해에 연기할 배우가 누가 있겠는가. 액션(‘피도 눈물도 없이’), 사극(‘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 신파 멜로(‘너는 내 운명’) 등 여배우 중 그녀만큼 장르를 골고루 섭렵한 이도 드물다. 영화 관계자들 사이에 “이제 전도연에게선 (연기는) 나올 만큼 다 나왔다”는 얘기가 나돌 무렵엔 ‘밀양’의 아이를 잃고 피 토하듯 절망하는 여인으로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이창동 감독은 그런 그녀에 대해 “그 누구도 예상하거나 규정할 수 없는 배우”라고 말한다.
연기력과 함께 그녀를 설명하는 단어 중 하나가 근성이다. 그를 키운 매니저 박성혜는 “시사회 때는 손에 땀이 찰 만큼 긴장하지만, 불이 켜지면 돌변해 현장을 장악한다”고 말한다. ‘하녀’ 관계자들도 “포스터 촬영 등에서 아무리 주문사항이 많아도, ‘내가 이걸 어떻게 다 해!’ 하고 엄살을 부리면서도 결국은 완벽하게 다 해냈다”고 전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그녀도 한때 ‘근성 없는' 시절이 있었다는 점이다. 서울예대 1학년이었던 그녀가 영화 ‘구미호’ 오디션을 보라는 영화사 대표의 제안을 “지금 시간이 없어서 안 된다”며 거절한 건 유명한 일화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연기자로 성공하겠단 욕심이 없었던 내게 좋은 작품들이 온 건 배우로 성장하라는 운명이었던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기선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