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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연 “내가 이걸 어떻게 다 해!” 엄살 떨지만 완벽하게 다 해내는 억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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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22면

연기력을 재는 잣대는 따로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인들은 연기 잘하는 배우 꼽기를 즐긴다. 2007년 영화전문지 씨네21이 실시한 영화인 121명 대상 설문조사에서 전도연은 연기력이 뛰어난 배우 3위를 차지했다. 1위 송강호, 2위 황정민이었으니 여배우 중에서는 1등을 한 셈이다. 충무로 관계자들은 “한국 여배우 중 연기 폭이 가장 넓고 다양하다”고 입을 모은다.

전도연의 필모그래피를 되짚어 보면 이 사실은 금세 분명해진다. 금방이라도 옷에서 땟국물이 번져 나올 듯한 시골 소녀(‘내 마음의 풍금’)와 아이에게 약 든 우유를 타 먹이고 애인을 만나러 가는 불륜녀(‘해피 엔드’)를 같은 해에 연기할 배우가 누가 있겠는가. 액션(‘피도 눈물도 없이’), 사극(‘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 신파 멜로(‘너는 내 운명’) 등 여배우 중 그녀만큼 장르를 골고루 섭렵한 이도 드물다. 영화 관계자들 사이에 “이제 전도연에게선 (연기는) 나올 만큼 다 나왔다”는 얘기가 나돌 무렵엔 ‘밀양’의 아이를 잃고 피 토하듯 절망하는 여인으로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이창동 감독은 그런 그녀에 대해 “그 누구도 예상하거나 규정할 수 없는 배우”라고 말한다.

연기력과 함께 그녀를 설명하는 단어 중 하나가 근성이다. 그를 키운 매니저 박성혜는 “시사회 때는 손에 땀이 찰 만큼 긴장하지만, 불이 켜지면 돌변해 현장을 장악한다”고 말한다. ‘하녀’ 관계자들도 “포스터 촬영 등에서 아무리 주문사항이 많아도, ‘내가 이걸 어떻게 다 해!’ 하고 엄살을 부리면서도 결국은 완벽하게 다 해냈다”고 전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그녀도 한때 ‘근성 없는' 시절이 있었다는 점이다. 서울예대 1학년이었던 그녀가 영화 ‘구미호’ 오디션을 보라는 영화사 대표의 제안을 “지금 시간이 없어서 안 된다”며 거절한 건 유명한 일화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연기자로 성공하겠단 욕심이 없었던 내게 좋은 작품들이 온 건 배우로 성장하라는 운명이었던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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