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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활 보호는 뒷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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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 윤창희 산업부 기자

휴대전화의 문자메시지를 수사기관이 감청하는 사례가 크게 늘고 있다는 보도는 '국민 사생활 보호'에 대한 정부나 통신업체들의 의식 수준이 아직도 멀었음을 그대로 보여준다. 무엇보다 감청 현황을 투명하게 공개하겠다던 정부의 의지가 구두선이 아니었느냐는 의문이 든다.

정보통신부는 매년 국정감사 등을 통해 수사기관에 의한 감청 자료를 공개해 왔다. 지난 9월 발표에 따르면 올 상반기 문자메시지를 감청한 휴대전화 번호 숫자는 175개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는 통신비밀보호법에 따른 감청일 뿐, 형사소송법에 근거한 감청은 공개하지 않았던 사실이 새롭게 드러났다. 이 숫자는 무려 1241개로 통비법에 의한 감청의 7배가 넘는다.

그렇다면 1241건은 공개할 가치가 없는 것일까. 정통부는 통비법에 의한 감청과 형소법에 의한 감청은 시점이 다르다고 주장한다.

전자는 수사기관이 문자메시지를 실시간으로 엿보는 것이지만, 후자는 과거 발생한 송수신 내용을 보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정통부 관계자는 "앞의 것은 순수한 의미의 통신제한조치로 볼 수 있지만, 뒤의 경우는 예금.사무실 등에 대한 일반적인 압수수색과 다를 바 없어 공개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감청의 시점을 나눠 신청 이후 발생한 건수는 공개하고 과거의 것은 공개하지 않았다는 정부의 설명에 과연 누가 공감할 수 있을까.

개인적인 커뮤니케이션 수단인 문자메시지 송수신 내용을 중앙 서버에 한 달씩 보관하는 통신회사들의 프라이버시 불감증도 문제다. 전체 인구의 75%가 휴대전화를 이용하고 있는 현실에서 범죄와는 무관한 대다수 국민의 '사적인 대화'를 요금분쟁 대비 등 자사의 이해관계 때문에 보관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통화시간이나 통화상대방 전화번호 등을 보는 '통화 내역 조회'도 전체의 40%가 검사장의 사후 승인 규정에 의해 이뤄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 조항은 유괴사건 같은 일이 생겼을 때 예외적으로 쓰라고 만든 것인데, 그렇게 긴급한 일이 40%나 됐다는 것은 정말 이해하기 어렵다.

윤창희 산업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