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진행 중인 프로젝트에 주는 '롤렉스상' 아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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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 항아리 안에 작은 항아리를 넣고 그 틈새에 젖은 모래를 채우면 훌륭한 냉장고 역할을 한다. 항아리 안에는 농산물이 들어 있다. (2000년 수상)

▶ 백색 발광다이오드로 경제적인 전구를 만들고 있다. (2002년 수상)

▶ 그르루지아에서 최초의 인류 조상의 화석을 발굴하고 있는 데이비드 로드키판디즈.(2004년 수상)

아프리카는 뜨겁고 건조한 곳이 많다. 농작물을 오래 보관하려고 해도 촌 동네에서는 냉장고도, 전기도 구경하기 어렵다.일부 잘사는 사람들만의 전유물일 뿐이다.

나이지리아에서 교사 생활을 하는 모하메드 바 아바는 1995년 항아리 속에 작은 항아리를 넣은 뒤 항아리와 항아리의 틈에 젖은 모래를 채우는 방식으로 '항아리 냉장고'를 개발했다. 젖은 모래가 마르면서 작은 항아리 안의 온도를 낮추도록 한 지극히 간단한 물리법칙을 이용한 것이다. 이덕에 3일 정도면 상하는 농작물이 27일까지도 싱싱하게 보관됐다. 아바는 이를 지역 주민에게 거의 원가에 보급하기 시작했다. 가난한 나이지리아 북부 농민들은 아바의 아이디어로 전기를 사용하지 않는 냉장고를 가질 수 있게 된 것이다.

아바는 2000년도 롤렉스상을 받았다. 아바의 항아리 냉장고 보급은 한창 진행 중인 프로젝트임에도 불구하고 롤렉스상이 주어진 것이다. 이 상은 세계적인 시계 메이커인 롤렉스사가 1976년 제정한 것으로 상금은 10만달러와 롤렉스 금시계. 아바는 이 상금으로 더욱 많은 동네와 주민에게 항아리 냉장고를 보급할 수 있게 됐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롤렉스상은 이처럼 이제 갓 시작했거나 진행 중인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는 사람을 수상자로 뽑는 세계에서 유일한 상이다. 노벨상이나 필즈메달, 호암상 등 거의 모든 상이 뚜렷한 성과를 낸 사람을 수상자로 선정하는 것과는 아주 다른 것이다.

롤렉스상은 과학과 탐험.환경.문화유산 등 5개 분야별로 각 한명씩 뽑는다. 격년으로 시상하며 올해로 11번째를 맞았다. 미국.캐나다.일본 등 선진국뿐 아니라 나이지리아.인도네시아 등 대부분의 나라 사람들이 벌써 수상자 대열에 합류했다. 그러나 한국은 수상자는 커녕 지금까지 신청자조차 없을 정도로 우리나라에는 알려지지 않았다. 지난 6월부터 내년 5월 말까지 2006년 수상 후보자를 접수하고 있지만 역시 한국인 신청자는 아직 없다는 것이 롤렉스사 측의 말이다.

'모험 정신'을 높이 사는 롤렉스상 수상자 선정 방침에 따라 역대 수상자들이 진행 중인 프로젝트도 다양하다.

올해 탐험 부문 수상자인 미국인 로니 두프레는 그린랜드를 개썰매와 카약으로 일주한 것을 포함해 여섯번이나 북극을 탐험했다. 내년에는 동료 탐험가와 함께 카약과 스키만으로 북극해를 횡단하면서 지구 온난화와 취약해진 북극의 생태계에 대한 경각심을 세계에 알리려는 계획이 높은 점수를 받았다.

2002년도 수상자인 프랑스 미셸 앙드레 박사는 고래의 위치를 선박에 알려 주는 시스템을 개발해 고래 보호에 나서고 있다. 이 시스템은 고래의 소리를 식별, 그 주변을 지나는 선박에 고래 위치를 알려줘 고래와 선박이 충돌하지 않도록 한 것이다.현재 앙드레는 카나리아 제도에서 이 방법을 시험하고 있는 중이다.

2002년도 수상자인 캐나다 데이비드 어바인-할리데이는 전기를 많이 소모하는 전구 대신 극소량의 전기로 빛을 내는 발광다이오드로 전깃불을 만들어 네팔에 보급하고 있다. 어린 학생들이 어두운 곳에서 공부하는 것이 안타까워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올해 수상자인 일본 기쿠오 모리모토는 캄보디아에서 전통 실크 제조기법을 복원하는 일을 하고 있는 공로를 인정 받았다. 롤렉스상 홈페이지는 www.rolexawards.com 이다.

박방주 과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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