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8 따라잡기] 수능 마친 고3생들에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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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수능시험이 끝났다. 한숨을 돌리는 고 3들의 표정과 마음이 제각각이다.

며칠이라도 더 휴식이 필요한 경우가 있는가 하면, 당장에라도 머나먼 우주 저 끝으로 떠날 듯 들뜬 얼굴도 있다.

그런가 하면 논술과 심층 면접에 사력을 다하겠다는 비장한 의지도 눈에 띈다.

자, 이들에게 가장 귀중한 조언을 해 줄 책들은 무엇일까. 특정한 인물의 삶을 깊숙히 느낄 수 있는 책들을 가장 먼저 권하고 싶다.

지금껏 아무 생각 없이 교과서에 줄을 치며 공부(?)만 한 어리보기라면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깊이 고민해 볼 수 있는 인물들의 삶이 적절하다.

1970년대 우리 사회를 각성하게 한 청년 노동자의 삶을 다룬 『전태일 평전』(돌베개)은 요즘 학생들에게도 매우 감동적으로 잘 읽힌다.

여기에 가난한 이들에게 따뜻한 인술을 펼쳤던 의사 『성산 장기려』(한걸음)와 『닥터 노만 베쑨』(실천문학사), 인간의 존엄성을 일깨워준 흑인 운동가의 삶이 생생한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마틴 루터 킹 자서전』(바다출판사), 겉만 읽을까 망설여지기는 하지만 영원한 혁명가의 모습을 담은 『체 게바라 평전』(실천문학사) 등을 더 꼽아볼 수 있다.

이들은 삶이란 그저 아무렇게나 낭비하는 게 아니라는 중요한 교훈을 던져 준다.

시험을 못 봤다고 좌절하는 '낙심한 영혼'이라면 『오체 불만족』(창해)과 같은 책을 권해 볼 만하다. 주인공인 오토다케 히로타다가 보여 주는 낙관적 자세는 자신을 돌이켜 보는 좋은 생각의 실마리가 된다. 좀더 독서능력이 있는 학생이라면 『헬렌 켈러』(미다스 북)도 놓치기 아까운 책이다.

약 6백여 쪽이 넘는 분량이라 읽기가 매우 버겁기는 하지만 깊이 생각하는 능력을 길러줄 만한 책이다.

특히 육체적인 장애 속에서 길어 올려지는 인간 영혼의 위대함을 진지하게 짚어 볼 수 있다. 아, 이 책을 읽기 전 나는 그녀에 대해 얼마나 얄팍하고 빤한 고정관념을 갖고 있었는가.

맥이 탁 풀린 '영혼'들이라면, 이들에게는 무엇보다 열정적인 삶이 빚어내는 인간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주면 좋다. 가난 속에서 불타오른 뜨거운 예술혼의 『이중섭 평전』(돌베개), 온갖 차별을 딛고 인류에 헌신한 여성들의 『노벨상을 받은 여성들』(자연사랑)도 챙겨 읽을 만하다.

급성 또는 만성적 무기력 증세를 보이는 학생들이라면 스포츠인이나 기업인의 성공스토리나 합격수기 같이 매우 단순 명쾌한 자기극복담을 읽게 하는 것도 아이디어다.

만일 이도 저도 아무것도 하기 싫은 마냥 게으른 영혼들이 있다면 아무 말도 하지 말고 함께 길거리를 걷거나 달려라. 그리고 숨이 가쁘게 될 때쯤 살짝 귀띔해 주라.

"『나는 달린다』(궁리) 한번 읽어 봐". 독일 외무장관인 요슈카 피셔가 달리기를 통해 자신의 인생을 완전히 뒤바꿔 놓는 드라마가 쉽고도 진지하게 펼쳐진다.

아직 대입의 부담이 남아 있는 고 3생들에게 어쭙잖은 위로나 격려는 오히려 해롭다. 그러니 그저 말없이 책 한 권을 그들에게 건네 줘 보자.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하는 순간이야말로 새로운 길을 여는 귀중한 순간이며, 그래서 바로 자신의 삶 또한 하나의 책이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할 수 있다. 그렇다. 인간은 책으로 서로 만나 성장하고 마침내 자신의 책들을 다시 아름답게 부화시킨다.

허병두 <'책으로 따뜻한 세상 만드는 교사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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