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디자인 중요성 커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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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1면

필자가 자동차 디자인을 공부하기로 결심했던 1990년만 해도 우리네 부모님들은 '디자인'하면 '앙드레 김'부터 떠올리던 시절이었다. 더구나 그 시절 어른들은 '디자인'이라는 발음이 그렇게 어려웠는지 매번 '데자인'이라고 했다.

디자인을 공부하던 시절, 친구들 사이에서 농담으로 오가기 시작한 '데자인'이라는 단어는 낡은 느낌의 디자인, 진부한 디자인의 대명사 정도로 여겨졌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자동차의 디자인을 소위 '자동차 데자인'으로 오인하고 있지는 않은가 궁금하다. 보통 신차가 등장하면 "날렵한 디자인이 일품이다"라는 찬사와 "해외 어떤 차종의 디자인을 닮았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교차한다.

소수의 자동차 전문 기자들이나 칼럼니스트들까지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들로 대중의 생각을 이끌어 가고 있는데, 이는 디자인의 스타일적 측면만을 언급한 낡은 개념이다. 디자인을 소위 '데자인'으로 머물게 하는 가장 흔한 예가 아닌가 싶다.

솔직히 우리 자동차 디자인은 스타일링적인 측면에 치우쳐 있어 '자동차 데자인' 수준에 있는 것이 사실이다.

새로운 스타일을 위한 몇 만장의 스케치들은 대부분 상품 기획에서 제시한 조건을 기본으로 제안되고, 더구나 마이너 체인지 모델은 기존 도면과 함께 새로운 형상을 위한 보다 구체적인 조건이 제시되기 때문에 디자인상의 자유는 시각적인 부분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아직까지 디자인의 역사가 짧고 디자이너의 입지가 약한 우리 나라는 디자이너를 미술과 관련된 직업으로 여기는 것이 일반적이다.

디자인 학과가 대부분 미술대학 안에 있고 교육과정이 예술과 관련한 표현기법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표현기법은 자신의 디자인을 좀 더 설득력 있게 보여 주는 하나의 방법에 불과하지만 대학에서는 잘 그리고 잘 만드는 사람을 양성하고 자동차 회사에서도 일정한 경력이 쌓이기 전까지는 소위 '데자이너'의 길을 걷게 된다.

그리고 더 걱정되는 것은 대부분의 디자이너들이 '데자이너'이길 당연하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선진국의 디자인 개념은 이미 시각적 쾌감을 위한 수단에서 벗어나 청각이나 촉각 등 소비자의 감각을 만족하는 다각적 시도를 하고 있다.

독일은 완전연소되는 배기음을 디자인해 소비자의 청각을 만족시킬 뿐 아니라 경쾌하게 작동하는 시프트 기어 노브를 디자인해 인간의 촉각에 호소한다.

모든 분야의 디자인 활동은 스타일링 디자인이 그러하듯, 각각의 분야에서 차별화된 상품성으로 만들어 주기 때문에 최근에는 경영과 마케팅에까지 디자인 파워가 접목되고 있는 추세다.

우리나라는 '감성 디자인'이라는 개념으로 몇 년 전부터 스타일링 디자인과 함께 상품성을 높이는 과정을 거치고 있다.

자동차의 조립간극을 조정하는 것에서부터 자동차의 컬러와 인테리어의 재질.무늬를 정하는 것, 심지어 작은 스위치의 작동감까지 조율하는 일련의 활동은 스타일링 디자인에서 머물던 우리 자동차 디자인에 상당히 고무적인 현상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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