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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와 군 개혁 잇단 충돌…육참총장 겨냥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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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육군본부에 대한 수사는 창군 이래 처음이다. 그만큼 충격적이어서 군 내부도 크게 동요하고 있다. 더구나 이번 수사엔 통치권 차원에서 힘이 실려 있는 것으로 군 일각에선 받아들이고 있다. 수사의 단서가 된 괴문서의 내용은 이미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제보된 바 있다. 이에 따라 관련 당국의 내사가 상당히 진행됐다. 민정수석실 관계자는 "준장 진급 인사는 청와대가 일일이 챙기진 않지만, 드러난 의혹에 대해선 철저히 진상을 조사해 규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남재준 총장 겨냥했나=군에선 이번 조사의 분위기가 지난 7월 북한 경비정의 서해 북방한계선(NLL) 침범에 따른 상부 보고 누락과 관련, 대대적인 조사 지시가 내려온 때와 비슷하다고 한다.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발표된 남재준 육군참모총장의 '정중부 발언' 소동과도 연결돼 있는 게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남 총장을 임명할 당시만 해도 청와대는 그의 청렴성을 높이 평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남 총장은 여러 측면에서 충돌을 일으켰다. 그 가운데 하나가 군의 사법 개혁 문제다. 사법개혁위원회가 요청한 군 사법기관의 독립과 지휘관 형량 감량권, 고등군사법원의 폐지 등에 대해 남 총장은 공개적으로 반대했었다.

대통령의 보좌관 출신으로 군 문민화를 밀어붙이고 있는 윤광웅 국방부 장관도 남 총장을 부담스러워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진급 인사과정에서 남 총장과 참모들의 문제점이 드러나면 이를 명분으로 육군 수뇌부 물갈이가 있을 것이란 전망도 그래서 나온다. 남 총장의 임기는 내년 4월까지다.

◆ 투서 내사 때도 충돌=국방부 검찰단이 지난 18일 이후 육군을 내사하는 과정에선 충돌이 발생했다. 군 검찰이 22일 오후 진급.보직 관련 인사자료를 요구하자 육본 측은 "개인적인 비밀이 들어 있으니 필요한 것만 보라"는 식으로 비협조적으로 나왔다고 한다. 그러자 군 검찰은 윤광웅 국방부 장관의 허락을 다시 받고 군 법원에서 영장을 발부받아 23일 압수수색에 들어간 것이다.

군 검찰이 압수수색이란 강수를 둔 것은 내사 결과 진급 심사 과정에서 비리혐의와 불공정성에 대한 상당한 확신을 가졌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관계자는 "진급 대상자에 대한 투서가 그들과 가까운 사람들에 의해 작성됐기 때문에 대부분의 내용이 사실과 부합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 괴문서 내용은 뭔가=군 검찰이 내사에서 공개수사로 전환한 것은 22일 오전에 뿌려진 괴문서가 계기가 됐다. 국방부 인근 군 간부 숙소인 '국방 레스텔' 지하주차장에 살포된 괴문서엔 지난달 단행된 장군 진급 인사에 대한 문제점이 들어있다. 이 투서는 "존경하는 대통령님 나라 꼴이 이래서야 되겠습니까"로 시작한다. 음주운전에 걸린 J대령, 보직 해임 경력이 있는 H대령, 군 고위층에 로비한 대령, 여론상 진급돼서는 안 되는 대령 등이 장군에 진급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밖에 ▶업무능력이 부적격하거나▶부대지휘에 결함이 있거나▶상급자의 가정에 부인을 '식모살이'시켰다는 등의 내용도 있다. 특히 남재준 육참총장 등 육군 실세와 인맥이 닿는 인사들이 대거 진급했다고 적었다. 올해 장군 진급자 52명 중 20여명이 이런 비리에 연루됐다는 주장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이번 투서 사건이 남 총장의 인사 방식에 피해를 본 대령들 사이에서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그러나 육군 관계자는 "J대령은 음주운전한 것은 사실이나 규정이 바뀌어 구제됐다"고 말했다. 올해부터 음주운전자는 한번만 불이익을 주기로 규정을 바꿨는데, J대령은 지난해 진급에 탈락됐다는 것이다. 또 H대령은 보직 해임된 적이 없었다고 한다. 또 투서에 기재된 국방부.육군본부 대령 연합회원이란 조직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다른 관계자가 말했다. 투서 내용에 사실과 다른 부분도 많다는 것이다.

육군의 인사 관련 고위 관계자는 "인사와 관련한 청탁이 들어오면 해당자는 무조건 탈락시켰다"면서 "이번 기회를 통해 진상이 명명백백하게 밝혀졌으면 한다"고 결백을 강조했다.

김민석 군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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