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기자가 만난 사람] 북한음식점 개업 여만철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3면

“함경도서 대구까지 멀리도 왔디요?”

1994년 4월 북한 사회안전부 대위 출신인 여만철(呂萬鐵 ·55)씨 일가족이 김포공항을 통해 귀순했다.

가족은 부인 이옥금(52),장녀 금주(27),장남 금룡(25),차남 은룡(23)군등 5명.이후 7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대구가 참 좋네요.특히 인심이 좋아요.투박한듯 하지만 친절하고 속내 깊은 대구 사람은 함경도 사람과 비슷해요.”

呂씨 일가족이 대구에 새 둥지를 튼 것은 지난 4월.달서구 장기동에 북한음식점 ‘하내비(할아버지의 함경도 사투리)’를 개점하면서다.

이들은 처음엔 서울에 자리를 잡았다.서울에서도 음식점을 했다.서울 면목동에 북한음식점을 연 것은 98년.

서울 음식점은 장사가 잘됐다.그래서 은근히 욕심이 났다.이게 화근이었다.99년 장안동에 음식점을 1백평 규모로 확장하면서부터 내리막길을 걸었다.음식점이 크면 손님이 많을 것으로 생각한 게 오산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해 11월엔 부인이 순대기계에 왼손 검지와 중지를 잃었다.IMF 여파로 손님은 줄고 적자는 늘어가기만 했다.지난해 4월 결국 문을 닫고 말았다.친지 한명 없는 서울에서의 좌절은 큰 충격이었다.7월엔 스트레스 탓으로 呂씨가 뇌졸증으로 쓰러졌다.呂씨는 지금도 약간의 언어장애 증상을 보인다.

“낙담이 컸더랬지요.식당을 확장하고부터는 나쁜 일만 생겼더랬어요.그래도 자식 농사 하나는 잘 지었어요.”

그 와중에 큰딸 금주씨가 지난 1월 출가한 것.그게 새로운 출발점이었다.대구 출신이던 사위가 呂씨에게 “대구서 음식점을 해보라”며 조언한 것.呂씨 가족은 두말없이 짐을 꾸렸다.귀순 뒤 처음으로 친지를 두게 된 대구는 따뜻한 고향으로 느껴졌다.

‘하내비’는 함경도식 냉면과 순대·만두를 선보이고 있다.감자전분을 사용한 함흥식 냉면은 가늘고 부드러워 쫄깃쫄깃하다.함경도 갑산서 자란 부인의 손맛이 그대로 배여 있다.

呂씨는 “황장엽씨 말대로 북한에 퍼주는 만큼 통일은 늦어질 것”이라며 “‘햇볕’은 납득할 수 없다”며 한마디로 딱 자르며 불만을 표시했다.

매일 새벽 4시에 呂씨는 부인과 함께 북구 매천동 농산물 도매시장을 다녀온다.일요일마다 본리성당을 찾는 일도 呂씨 가족의 주된 생활이다.

‘하내비’ 음식점의 사장 직함은 둘째인 은용씨가 맡고 있다.呂씨는 둘째아들의 육수솜씨를 한참 자랑했다.呂씨는 “대구에 내려오자 학교를 서울에서 다닌 은용이가 친구가 없는 것이 한가지 아쉬운 점”이라고 말했다.

呂씨는 “내만큼 행복한 사람도 없다”며 “죽기 살기로 남한에 내려와 이만큼 살 수 있는 것에 늘 감사해 하며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 것”이라고 말했다.대구에 오면서 呂씨 일가족은 모두 주민등록을 대구로 옮겼다.

呂씨는 “대구가 좋다”며 “땅으로 갈 때까지 대구에서 계속 살 것”이라고 말했다.

조문규 기자

◇여만철씨는...

▶1946년 함경도 풍산군 능기면 느평리 출생

▶82년 북한 사회안전부 정치대 졸업

▶82∼87년 북한 사회안전부 근무

▶87∼94년 함흥지구 수입자재연구소 근무

▶94년 4월30일 김포공항으로 귀순

▶95∼98년 서울 방지거병원 총무 근무

▶98∼2000년 서울 면목동서 음식점 경영

▶2001년 1월 딸 금주양 결혼

4월∼현재 대구서 음식점 경영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