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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압박서명 무산] 청와대 설득에 슬그머니 후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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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31일 밤 11시10분 여의도 관광호텔. 임채정(林采正.열린정치 포럼), 김성호(金成鎬).김태홍(金泰弘.새벽21), 이재정(李在禎.국민정치연구회), 신기남(辛基南.바른정치모임), 장영달(張永達.여의도정담)의원 등 민주당내의 5개 쇄신파 그룹을 대표하는 6명이 심야에 모습을 나타냈다.

이들은 "3일 청와대에서 열리는 최고위원회의 때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지켜보겠다"면서 "김대중(金大中)대통령에게 당정쇄신을 촉구하기 위해 소속 의원들의 서명을 받기로 했던 당초의 방침을 철회한다"고 결정했다.

청와대와 당 지도부의 집중적인 설득으로 '즉각적인 당정개편론'의 기세를 꺾는 한밤중의 역전극이 펼쳐진 것이다.하지만 당 안팎의 쇄신 요구엔 김을 빼는 형국이 됐다.

이날 하루 민주당은 거의 마비상태에 빠졌다. 오전 8시30분 국회 본관 민주당 총재실. 한광옥(韓光玉)대표가 긴급 소집한 최고위원 회의는 두 시간이 넘도록 격론을 벌였지만 아무런 결론도 내리지 못했다.

이에 앞서 오전 7시30분에는 당내에서 가장 적극적인 쇄신파 초선그룹인 '새벽21'(대표 朴仁相의원) 소속 의원 10명이 여의도 모 호텔에 모여 '폭탄 선언'을 했다.

이들은 ▶당 지도부 사퇴▶동교동계 좌장인 권노갑 전 고문과 청와대 박지원(朴智元)정책기획수석의 정계은퇴를 촉구했다.

비슷한 시간에 또다른 의원모임인 '여의도정담'(대표 趙舜衡의원) 소속 의원 7명도 "당.정.청의 전면적 인사개편과 함께 비선라인이 인사와 의사결정에 간여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며 동교동계를 겨냥했다.

이어 오전 10시에 5개 의원그룹의 대표 6명이 모여 "대통령의 결단과 즉각적인 인사쇄신을 촉구하는 합동 서명작업에 돌입하겠다"고 발표했다.

'새벽 21'의 김성호 의원은 "소속 의원 과반수 이상의 서명을 받을 자신이 있으며, 만일 金대통령이 의원들의 의사를 무시하면 중대한 사태가 발생할 것"이라고 말했다.

의원들의 서명추진 소식에 청와대는 발칵 뒤집혔다. 청와대 유선호(柳宣浩)정무수석 등은 이날 오후 의원들에게 전화를 걸거나 직접 만나 "대통령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서명을 하는 건 옳지 않다" "잘 수습되도록 도와달라"며 설득과 호소를 했다. 일부 최고위원들도 "서명 돌입은 자폭 행위"라고 우려를 표시했다.

그 결과 의원모임의 대표들은 심야 긴급모임을 하고 당초의 서명추진 방침을 철회한 것이다.

그러나 민주당은 이미 만신창이 상태다. 당내에선 "이번 사태는 당 총재인 金대통령의 책임이 크다"(조순형 의원),"당과 국회의 올바른 운영을 위해서는 대통령이 당 총재직을 내놓는 방안도 있다"(신기남 의원)는 등의 얘기도 나온다.

1일 오전 있을 당무회의에선 동교동계가 쇄신운동을 주도하는 김근태.정동영 최고위원 등을 정면으로 공격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그래서 31일 오후에는 당무회의가 전격 취소될 것이란 소문까지 나돌았다.

김종혁.김정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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