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신데렐라 언니’ 이어 ‘하녀’까지 … 배우 서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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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끈한 이마에선 소녀의 천진함이, 도톰한 입술에선 도발적 섹시미가 풍기는 배우 서우. “백치미인 같다는 소리도 가끔 듣는다”며 허물 없이 웃었다. [김태성 기자]

“내가 어린애니?” 그리고 살짝 치켜든 눈썹. 그것으로 충분했다. 갓 태어난 강아지마냥 안기고 징징대는 효선(서우)이 ‘곱게 자란 응석받이’만은 아니란 걸 보여주는 데. 새 엄마(이미숙)의 이중성을 알면서도 “내가 좋아하니까 상관 없다”는 대범함. 그래 놓고 심장이 터질 듯 흐느껴 우는 절절함까지. ‘도대체 어디서 튀어나온 애야?’ 싶은 발견이다.

애, 아니다. 왕따 여중생(영화 ‘미쓰 홍당무’)부터 형부와 사랑에 빠지는 처제(영화 ‘파주’), 당돌한 제주 해녀(드라마 ‘탐나는도다’)와 고혹적인 상류층 안주인(영화 ‘하녀’)까지 거침 없이 변신해 온 25살 여배우 서우. KBS2 수목드라마 ‘신데렐라 언니’(이하 ‘신언니’)에선 모성에 굶주린 의붓딸 효선을 처연하게 표현한다. “밝음이 밝음이 아니고, 부족하게 자랐기 때문에 동물적으로 눈치가 빠른” 효선을 섬세한 눈썹 움직임으로 드러낸다.

“원래 좀 단순하고, 감정을 숨기지 않고 얼굴에 다 드러내는 편이예요. 그래서 미묘한 감정을 연기해야 하는 ‘파주’ 때 참 힘들었어요. 덕분에 ‘신언니’에서 다중적인 효선을 보여줄 수 있는 것 같아요.” 9일 경기도 양평 촬영현장에서 만난 서우는 효선의 이중 캐릭터를 표현하는 ‘내공’을 이렇게 설명했다.

초반 스스로 “안티를 부르는 애교”라고 말할 정도로 과장된 천진함을 보인 서우는 중반 이후 은조(문근영)와 칼날 맞서듯 대립한다. “서우가 맡았기 때문에 뻔한 신데렐라가 아니라 독특한 뒤틀림이 가능해졌다”(김영조 연출)는 말대로, 표현의 진폭이 넓은 게 강점. “아직 신인이라서 ‘도대체 어떻게 하는 거지?’ 하면서 투정부리고 많이 물어요. 다들 도와주시고, 제가 하는 걸 ‘옳다’ 하며 반영해주니까 자신감을 얻고 나아지는 것 같아요.”

데뷔 불과 3년. 2007년 영화 ‘아들’에서 단역으로 얼굴을 비친 걸 시작으로 영화 ‘미쓰 홍당무’, 시트콤 ‘김치치즈스마일’ 등을 거쳤다. 연기자로서 조명 받은 것은 ‘파주’ 때. ‘미스 홍당무’의 제작자인 박찬욱 감독이 “강혜정·김옥빈을 처음 봤을 때 느낀 전율을 서우에게서 다시 느꼈다”고 말할 정도로 관객을 무장해제 시키는 ‘여백의 미’를 타고났다. 덕분에 드라마 ‘탐나는도다’와 영화 ‘하녀’까지 겹치는 캐릭터가 거의 없다. “갑작스레 다양한 역할을 맡으니까 ‘스폰서라도 있는 거 아냐’ 하는 의혹까지 받았다”며 너털웃음을 짓는다.

은조 역 문근영이 실제론 2살 연하지만 처음 만났을 때부터 “반말 하라”고 했단다. “연기로는 훨씬 선배이고, 배울 점도 많아요. 둘이 맞대결 운운하는데, 현장에선 자기 연기에 바빠서 서로 의식할 틈도 없어요.”

주변을 의식하기보다 자기 연기에만 몰입하는 대찬 면모는 ‘칸의 여왕’ 전도연과 함께 한 영화 ‘하녀’에서도 드러난다. 쟁쟁한 선배들 틈에서 껍질뿐인 상류층의 품위를 서늘한 표독스러움으로 소화했다. “임산부 역할을 하기엔 동안인 편이고, 그래서 ‘안 어울린다’는 우려도 있었지만, 그걸 깨부수는 게 재미 있었어요. ‘서우한테 저런 표정이 있었네’ 하고 놀라는 걸 보면, 세포가 스멀스멀 깨어나는 기분?!”

오목조목한 눈·코·입에 코맹맹이 소리까지, 구체관절 인형이 살아있는 듯한 외모다. 스스로는 “예쁜 분들이 너무 많아서 배우 하기 힘들겠다는 생각도 했다”지만 역에 몰입하는 모습을 화면으로 확인할 땐 ‘저런 서우는 예쁜 것 같다’며 만족한다고. “노출이건 악역이건 스스로 한계를 없애가는 이 작업이 즐겁다”는 그녀라면, 제 발로 ‘칸의 신데렐라’가 될 날도 멀지 않은 듯했다.

글=강혜란 기자
사진=김태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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