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심리 위축에 중개인 주문 실수 겹쳐 … 뉴욕증시 한때 패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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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6일(현지시간) 오후 2시25분. 옆으로 기던 뉴욕증권거래소(NYSE) 다우지수가 갑자기 곤두박질하기 시작했다. 설마 했던 것도 잠시, 불과 20분 만에 다우지수는 998.5포인트 폭락했다. 장중 하락으로는 역사상 가장 큰 폭인 9.2%였다. 2001년 9·11 테러, 2008년 리먼브러더스 파산 때보다 더 큰 낙폭이었다.

다우지수에 포함된 액센추어 주가는 42.17달러에서 4센트로 순식간에 100분의 1로 추락했다. 프록터 앤 갬블도 62.16달러에서 39.37달러로 반토막이 났다. 시장은 요동쳤다. 미처 손쓸 사이도 없이 컴퓨터에 입력된 프로그램이 팔자 주문을 쏟아냈다. ‘팔자’가 다시 ‘팔자’를 부르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한바탕 태풍이 지나간 뒤 시장은 냉정을 되찾았다. 이날 다우지수는 347.80포인트(3.2%) 떨어진 채로 거래를 마감했다. 9% 가까이 급락했던 나스닥과 스탠더드앤드푸어스 500지수도 각각 3.4%와 3.2%로 낙폭을 줄였다.

나스닥은 이날 2시40분~3시 사이 이루어진 거래 중 2시40분 가격 대비 60% 이상 떨어진 종목의 거래를 취소한다고 밝혔다. NYSE도 같은 시간대 전자거래에 대해 똑같은 조치를 취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날 갑작스러운 주가 폭락 사태의 원인은 아직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다만 시장에선 씨티은행 주식 중개인이 프록터 앤 갬블 주식을 컴퓨터로 팔면서 100만(million)인 거래량 단위를 10억(billion)으로 잘못 입력하는 바람에 촉발됐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1600만 주를 판다는 주문이 160억 주 매도로 입력됐다는 것이다. 갑작스러운 대량 매도 주문이 나오자 컴퓨터 프로그램이 즉각 프록터 앤 갬블 매도 주문을 쏟아냈고 이것이 다우지수를 끌어내렸다. 이게 다시 다우지수에 포함된 종목에 대해 자동 매도 주문을 부르는 악순환이 순식간에 일어났다는 것이다.

프로그램 주문은 세계 증시가 폭락할 때마다 시장을 흔든 주범으로 꼽혔다. 그러나 1초에도 수천 건의 거래가 이뤄지는 광속 거래에 대응하기 위해선 컴퓨터 프로그램 매매가 불가피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그러나 이날 주가 급락은 일시적 혼란으로 넘길 만한 사안은 아니다. 금융위기가 채 수습되지 않은 상황에서 그리스 재정위기가 닥친 탓에 작은 충격에도 시장 전체가 요동칠 만큼 투자심리가 불안하다는 것을 잘 보여준 것이다. 세계 최대 채권투자회사 핌코의 최고경영자 모하메드 엘-에리언은 이날 CNBC와의 인터뷰에서 “한 나라(그리스)에서 시작된 위기가 유로존 전체에 충격을 주는 것을 목격해 왔으며, 이는 이제 전 세계의 문제가 되려 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뉴욕=정경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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