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있는 토크쇼] 김석철의 20세기 건축 산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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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이 시대 한국의 핵심 건축가 김석철(57,아키반 건축도시연구원장)씨의 신간 『20세기 건축 산책』(생각의나무,9천8백원)을 읽다 보면 건축은 ‘인문적 예술행위’을 재확인하게 된다.역사와 현재가 교감하고,자연과 문명이 만나 동시대의 요구를 구현해내는 거대한 디자인 행위 말이다.

신간은 가우디,라이트,그로피우스,코르뷔지에 등 20세기 건축가 12명의 삶과 작품세계에 대한 입문서로 꾸며졌다.그들과 만난 경험 등이 실감 나는 에세이풍이다.

‘책이 있는 토크쇼’를 위해 찾은 김씨의 연구소에서도 그가 지향하는 건축언어를 체감할 수 있었다.

서울 가회동의 전통 한옥 두 채를 매입해 한옥 골조를 유지하면서 벽면 쪽 전체를 유리로 만들며 안과 밖이 하나로 느끼게 최근 개축했다.

이탈리아 베네치아 도시대학 등에서 강의를 위해 1년에 5개월을 해외에서 보내는 김씨는 “한국적 미학이 제대로 담긴 세계를 설계하고 싶다”고 말한다.

칼러 화보만으로도 20세기 건축사를 일별할 수 있게 꾸민 신간을 놓고 대화를 나눈 건축 비평가 김경수(명지대 건축학과)교수는 “건축을 공학기술로만 여기는 우리의 시각 교정을 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사회=책의 서문에 우리가 몸담고 살고 있는 건축과 도시에 대해 지식인조차 너무 무관심함을 꼬집는 대목이 나온다. 책의 서술도 모름을 전제로 쉽게 풀어 쓴 것으로 보이는데,'건축이란 무엇인가'라는 본질적 문제부터 새삼 던져본다.

▶김석철=건축은 한 시대 문명의 수준을 읽는 키워드다. 하지만 고단한 20세기를 숨가쁘게 살아온 우리에겐 건축예술을 평가할 수 있는 감식안이 절대 부족하다. 그래서 우리가 살다가 후손에게 남길 건축과 도시에 대해 일반인과 지식인이 쉽게 다가설 수 있게 하기 위해 책을 썼다.

▶김경수='아름다움' '쓸모' '견고함'이 건축의 세 요소다. 건축가는 예술과 사회와 기술을 종합하는 지휘자다. 삼박자를 갖추기 위해 노력한 건축의 구도(求道)정신을 위대한 건축가들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20세기에서 건축은 예술이 아니라 기술이었고 건축가들을 기술자로만 대우해 왔다.

▶김석철=튼튼하게 건물을 짓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건축의 기본이다. 건물의 기능과 쓸모에 대한 고려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것만으론 부족하다. 책을 통해 건축가가 무엇을 하는지가 아니라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려고 했다. 목표는 물론 아름답고 격조있는 삶을 지향하는 것이다.

▶사회=20세기를 빛낸 건축가가 많을텐데 이 책에 소개한 12명의 공통점이 있다면.

▶김석철=책에 소개한 사람들은 모두 자신들이 살고 있던 도시를 역사와 자연과 인간이 융합된 곳으로 만들고자 했다. 차가운 기하학적 구도로 대표되는 서양 근대 건축의 한복판에서, 그 근대성을 완벽히 체현하면서도 그것을 넘어 자연의 따뜻한 유기적 언어와 조화시키려 했던 이들에게 나는 '위대한 작가'란 수식어를 헌정하고 싶다.

▶김경수=소개된 건축가들은 대체로 현대적 고전 반열에 오른 인물들이다. 전통과 역사를 부인하고 경제성만을 중시한 근대 건축의 슬로건에 맞춰 이들은 기능에 충실했으면서도 동시에 감성적 요소도 중시했다. 그래서 이들을 통해 21세기 비전을 발견하게 된다. 몇몇 빠진 사람도 눈에 띄어 아쉽지만 후속으로 펴낼 2권에 포함되길 기대한다. 다른 한편 건축의 진정한 의미가 잘 이해되고 있지 않은 우리의 교육 현실이 대비돼 안타깝다.

▶사회=건축 교육에 문제가 있나.

▶김경수=유럽연합(EU)에선 공대 출신을 건축가로 인정하지 않는다. 우리의 건축미학이 불모상태인 이유는 건축학이 공과대학에 소속돼 인문학에 대한 수련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 책에 소개된 사람들을 보라. 역사와 철학과 사회학 등의 수련을 쌓고 동시대의 문제를 공유한 사람들이다. 의과대학처럼 건축학도 5~6년제 단과대학으로 독립하는 것은 세계적 추세다.

▶사회=독립된 건축대학에서 뭘 가르치나.

▶김경수='아름다움'을 갖추기 위한 인문학과 '쓸모'를 위한 사회과학, 그리고 '견고함'을 위한 공학 등 건축의 3대 요소를 종합적으로 가르쳐야 한다. 잇따른 부실공사 사고로 견고함도 제대로 충족시키지 못하는 현실은 도구적 기능교육만 한 데서 비롯된다고 볼 수도 있다.

▶김석철=전문가 교육도 중요하지만 일반인이 건축을 알고 사랑해야 위대한 건축이 나올 수 있다. 이 책을 쓴 목적이기도 한 데, 일반인의 안목을 키워 아름다운 도시에 살고 싶은 소원을 갖게 해야 한다.

▶사회=책에 많이 나오는 유기적 건축이란 말을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김경수=비가 오고, 낙엽이 지며, 눈이 내리는 자연의 호흡을 몸으로 느낄 수 있게 건축하는 것을 말한다. 그렇지 않은 문명은 오히려 퇴보라 할 수 있다.

▶김석철=현대건축의 위대한 성취는 대부분 자연을 정복한 인간 환경의 창조였다. 책에 소개된 가우디가 언젠가 스승이 누구냐고 질문을 받자 손가락으로 밖을 가리키며 "자연"이라고 말했다. 가우디 이후 자연과 공생을 추구하는 유기적 건축이란 말을 공식적으로 표명한 이는 라이트였다. 그는 일본 건축의 영향을 받았다. 이 점에서 한국 전통건축의 재해석 작업도 절실한 시점이다.

▶사회=소개된 건축가들이 대부분 유럽인인 데 비해 멕시코 건축가 루이스 바라간이 포함된 점이 눈길을 끈다.

▶김석철=바라간은 제3세계에서 태어나 유럽에서 유학했지만 유럽에 함몰되지 않고 멕시코의 자연과 아즈텍문명 등 자신의 역사를 작품속에 녹여내 오히려 세계 건축을 이끈 유럽에 영향을 끼친 사람이다. 우리에게서도 바라간처럼 서구문명을 몸 전체로 이해하고, 그 바탕 위에 우리 문명과 자연의 시각 어휘를 보여줄 건축가가 나와야 할 때다.

사회.정리=배영대 기자

사진=김태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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