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대통령의 아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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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대통령 아들'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이 고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의 아들이다.

1963년 11월 케네디 대통령의 장례식 때 아버지 관을 향해 거수경례를 올리던 세살배기 꼬마의 천진난만한 모습에 전세계가 눈물을 흘렸다. 그 케네디 2세도 2년 전 비행기 사고로 사망, 다시 한번 미국인들을 울렸다.

악명 높은 대통령의 아들로는 아이티의 전 독재자 장 클로드 뒤발리에가 있다. '베이비 독'으로 잘 알려진 그는 71년 아버지 '파파 독'(프랑수아 뒤발리에)에 의해 겨우 19세의 나이에 종신 대통령에 올랐다.그러나 온갖 악행을 저지르던 그는 결국 86년 권좌에서 쫓겨나 프랑스로 망명했다.

헌정사가 파란만장했던 우리도 대통령 아들들의 삶이 평탄치 못한 경우가 많았다. 이승만 전 대통령의 양자 강석씨는 가짜 이강석 사건까지 생길 정도로 '귀하신 몸'이었다.

그러나 그는 4.19때 생부인 이기붕 국회의장 등 가족과 함께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아들 지만씨도 부모를 모두 흉탄에 잃은 충격으로 한때 마약에 손을 대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는 비리혐의로 철창신세를 지기도 했다.

이번엔 김대중 대통령의 장남 홍일씨 문제로 시끄럽다. 그동안 비리혐의와 관련,막연히 'K'라는 이니셜로 지칭돼 온 그의 실명을 야당이 공개하면서 여야가 정면충돌 양상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그는 지난달 에세이집을 출판하면서 대통령 아들로서의 심경을 독한 어조로 토로한 적이 있다. "대통령의 아들은 명예라기보다 멍에요, 행복보다는 불행 쪽"이라고 밝힌 그는 "바보처럼 살다 배필을 만나 아버지가 건네주는 생활비로 살다 죽으라는 말인가"라고 울분을 토했다.

그는 또 "과정에 문제가 없다면 자신의 길을 당당하게 가도록 배려하는 성숙한 민주사회가 됐으면 한다"고도 했다. 백번 옳은 말이다. 민주사회에서 대통령 아들이라고 기본권을 제한해서도 안되고, 제한할 수도 없다.

그러나 이처럼 흥분하기 전에 그는 대통령 아들을 보는 세간의 눈이 거리의 장삼이사(張三李四) 대하듯 할 수는 없는 엄연한 현실을 직시했어야 한다. 그만큼 언행에 신경써야 한다는 얘기다. 사람을 가려 만나야 하는 것은 일종의 도덕적 의무다.다 훌륭한 아버지를 둔 업보가 아니겠는가. 그게 싫다고 아버지가 대통령을 그만 두게 할 수는 없을 것 아닌가.

유재식 베를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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