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수당’ 주니 정 넘치고 끈끈해지고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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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중견 건설업체인 한신공영에 근무하는 최원용(30)씨는 대구광역시 내당동에 사는 부모님과 일주일에 서너 번 통화한다. 최씨는 “2년 전 한신공영에 취직한 뒤부터 부모님께 전화 드리기는 ‘생활의 일부’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부모님도 무뚝뚝했던 아들이 부드러워졌다고 반가워하신다”고 덧붙였다.

이 회사에는 최씨처럼 부모와 ‘살갑게’ 지내는 직원들이 많다. 2003년 1월부터 회사에서 월 2만원씩 지급하는 ‘효(孝)수당’이라는 특별수당이 한몫했다. 이 제도를 제안한 최용선 한신공영 회장은 “큰 액수는 아니어도 부모님께 전화로라도 감사하는 마음을 표현하자는 취지에서 효수당을 만들었다”고 소개했다. 지금까지 이 회사는 750여 명의 임직원에게 11억원의 효수당을 지급했다.

◆“입사 서류에 부모님 통장 계좌”=한신공영 말고도 중견·중소기업 중에는 임직원(혹은 배우자)의 부모에게 ‘효도수당’ ‘명절 용돈’ 등을 지급하는 회사가 꽤 있다. 가족친화 경영을 통해 내부 결속을 다지면서 애사심을 높이겠다는 한국적 ‘정(情) 경영’의 한 모습이다.

지난해 9월부터 대학 편입학원을 운영하는 아이비김영에 다니는 조윤상(29)씨는 “입사할 때 부모님 1인의 통장 계좌번호를 제출하라고 해 당황했다”며 “알고 보니 효도수당 입금용이었다”고 말했다. 아이비김영은 직원 또는 배우자 부모 통장으로 직접 월 10만원씩 효도 수당을 입금해준다. 이 회사 설립자인 김영택 회장이 ‘사람 냄새 나는 기업을 만들겠다’는 뜻에서 2002년 초 만든 사원가족 복지제도다.

월드건설은 2004년 창업자인 조규상 회장이 제안해 월 5만원씩 효도 수당을 지급하고 있다. 건설경기 부진으로 이 회사는 지난해 4월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에 돌입했지만 조 회장은 “효도 수당은 회사의 자긍심이다. 절대 삭감하지 않는다”고 해 사내에 잔잔한 화제가 됐다.

기능성 의자 제조업체인 듀오백코리아도 부모 혹은 장인·장모를 모시는 직원에게 월 2만원씩 효도 수당을 준다. 창업 2세인 정관영 사장이 10여 년 전 만든 것이다. 반도체 설계회사인 알파칩스는 명절이나 생일 등 ‘특별한 날’에 직원 부모 계좌로 용돈을 입금한다.

◆보이지 않지만 튼실한 효과=‘효수당의 효과’를 분석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최용선 한신공영 회장은 “지난해 2조원이 넘는 수주 실적을 달성한 데는 효수당이 보이지 않지만 든든한 후광 역할을 했다”고 자평했다. 최 회장은 “사람의 기본 도리인 효를 실천하는 사람이라야 타인을 배려하고 호의에 감사할 줄 안다. 그런 조직원이 모인 기업이라면 좋은 실적을 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월드건설 관계자 역시 “회사가 부모까지 배려한다는 생각에 직원들이 더욱 열심히 일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아이비김영 이상원 부원장은 “김영이 교육업계에서 현저히 낮은 이직률을 자랑하는 데는 효도 수당 같은 가족 친화적인 기업 분위기가 한몫했다”고 소개했다.

가정경영연구소 강학중 소장은 “부모를 공경할 줄 아는 직원 중에 회사 일을 허투루 하는 경우는 드물다”며 “가정을 배려하고 지원하는 회사는 실적도 좋지만 특히 위기에 강한 기업문화를 가졌다”고 말했다.

이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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