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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존경심 꼴찌' 학생 대 어른 간담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중앙일보는 '한국 청소년들의 어른에 대한 존경심이 아태지역 17개국 중 꼴찌'와 '청소년 51%, 부모.교사에게 '상말'지칭 해봤다'를 잇따라 보도했다.

이 문제를 진단하기 위해 중앙일보는 학부모 2명,교사 2명, 중.고생 4명을 초청해 서로의 생각을 가감 없이 털어놓는 '누드 좌담회'를 가졌다.

-조사 결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한혜리=친구들과 선생님이나 부모에 관해 얘기할 때 'ㅆ'발음이 많이 나왔던 걸 생각하면 어느 정도 예상했던 결과예요.

▶오혜경=선생님으로서 부끄럽죠. 그동안 어른들의 말과 행동이 달랐던 게 이런 결과를 빚은 것 같네요.

▶배정원=엄마를 '그 ×'라고도 부른다는 내용엔 쇼크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요새 아이들에게 '존경'이라는 단어가 익숙지 않은 것도 영향을 미쳤을 것같아요.

-학생들이 교사와 부모에게 무례한 언행을 하는 경우가 많은가요.

▶조재현=학생들이 선생님들을 놀리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선생님에게 "아이, 또 삐졌어"라는 말을 하기도 하고, 선생님 앞에서 욕을 하고 싶을 땐 "아이 신발(씨발)"하거나 "아이 변신(병신)"해요. 어떤 친구들은 '엄마는 돈 주는 사람'정도로 생각합니다.

▶한혜리=수업시간에 선생님 앞에서 애들끼리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는 일도 있어요. "우리 반에 '(왕)따'가 있는데 그 '따'가 바로 담임"이라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오혜경=소풍을 가서 학급 학생들이랑 밥을 먹는데 "선생님 드세요"라고 말하는 아이가 아무도 없었어요. 한참 뒤 한명이 "선생님도 드시죠"라고 하니, 다른 아이가 "우리 밥도 모자라"라고 하더군요. 평소 반 아이들과 친하게 지냈는데 마음에 큰 상처를 받았죠.

▶전상춘=내 아이도 집에서 선생님 얘기를 할 때 욕을 섞어 쓰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부모에게도 버릇없게 구는 아이들을 주변에서 많이 보죠.

▶이예진=수업 도중 화장실에 가고 싶으면 "똥싸러 갈 게요"라고 큰 소리로 말하는 애들도 있어요. 어떤 반에서는 선생님과 '농담 따먹기'를 하며 수업시간을 보냅니다.

▶오혜경=선생님을 어려워하지 않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죠. 하지만 무조건 버릇없고 나쁘다고만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기 표현력이 예전 세대에 비해 좋아졌다고 볼 수 있죠. 수학수업 중에 문제를 풀라고 하면 서로 먼저 뛰어나오려다 넘어지는 애들이 있을 정돕니다. 정답을 다 맞히냐 하면 그것도 아니예요.

-어른에 대한 존경심이 옅어진 원인을 무엇이라고 봅니까.

▶전상춘=사회가 급속히 서구화되면서 가치관이 무너진 게 근본적 원인이죠. 나도 내 자식한테 잘못을 지적하기 힘듭니다. 어른들이 먼저 모범을 보여야 애들을 야단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아이들이 보고 배울 만한 어른이 거의 없다고 봅니다.

▶강방식=요새 아이들이 조숙한 것도 한 이유인 것 같아요. 사회가 민주화되고 웬만한 정보는 다 공개되기 때문에 요즘 애들은 중.고교 때 옛날 대학생 수준의 생각을 합니다.

▶배정원=존경의 바탕은 호감입니다. 어른들이 아이들과 친밀감 없이 지낸 탓이 크죠.

▶조재현=교육제도가 잘못됐기 때문이예요. 초등 1학년 때부터 경쟁만을 강요하는 삭막한 상황에서 존경심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박원근=언론에도 문제가 있어요. 좋은 뉴스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깎아내리고 비판하는 데만 바쁩니다.

-청소년으로서 가정과 학교에 대한 불만이 있다면.

▶한혜리=엄마가 과거의 일을 꺼내 나를 혼내는 게 너무 싫어요. 얘기도 들어보지 않고 먼저 판단해 꾸지람을 할 때는 화가 나죠. 진지하게 대화하려다가도 싸움으로 끝나게 됩니다.

▶이예진='수행 평가'가 생긴 이후 어떤 선생님은 수업시간에 채점표를 들고 와서 태도가 나쁜 학생의 점수를 그 자리에서 깎아요. '점수 깎는 사람'으로만 보입니다.

▶조재현=아직도 학교에서 비인권적인 교육이 이뤄져요. 학생부에 가면 '떡메'라는 무서운 무기가 있어요. 선생님들은 '교칙 수호봉'이라는 몽둥이로 아이들을 때려요. 또 여전히 바리캉으로 두발 단속을 합니다.

▶박원근=선생님들이 체벌을 하더라도 감정에 치우치지 말고 기준을 가지고 혼을 냈으면 좋겠어요.

▶전상춘=학생들에게도 문제가 있어요.어른 탓만 할 것이 아니라 학생들 스스로도 남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마음을 가지려고 해야 하지 않을까요.

-대안은 무엇일까요.

▶배정원=여유를 갖고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우리 부모들은 너무 마음의 여유가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중학교 1학년 아들이 입만 열면 욕을 해 속상했는데, 뜻밖에 아들 친구에게서 아들이 '강해 보이려고' 욕을 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아이들 입장에서는 다른 이유가 있을 수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박원근=나에게 먼저 관심과 사랑을 보이는 선생님이 항상 기억에 남았어요. 아이들은 수동적인 교육에 익숙해져 있어 '학습된 무기력'에 빠지는 경우가 많아요. 선생님들이 아이들에게 일일이 신경쓰기가 힘들겠지만 그래도 먼저 손을 내밀어 줬으면 좋겠어요.

▶조재현=부모들도 무조건 '하지 마라''넌 왜 그러니'같은 말만 하지 말고 사랑을 표현해 줬으면 좋겠어요. 부모와 싸우는 이유는 거의 다 성적 때문인데, 성적이 떨어지면 가장 속상한 건 우리죠. 화가 나더라도 먼저 따뜻하게 위로해 줄 수는 없을까요.

▶강방식=학생들 얘기에 공감합니다. 문제아로 보이는 학생이라도 관심을 갖고 묻다 보면 나름대로의 논리적인 이유가 있더군요. 교사들이 아이들을 이해하려는 노력도 부족하다고 느껴요. 예를 들어 학생들이 자주 쓰는 '졸라''짜증나'같은 말의 경우, 입버릇일 뿐 예전과는 다른 의미로 변했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그런 한두 마디 말에 화를 내서는 학생과의 신뢰 관계가 형성될 수 없죠.

▶전상춘=가정에서 예절 교육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핵가족이 되다 보니 아이들만 우선으로 여기고 예의범절을 가르치지 않은 탓이 큽니다. 언론에서도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기사를 많이 실어 줬으면 좋겠어요.

사회.정리=이경희.김현경 기자

*** 참석자

전상춘 (47.중고생 학부모)

배정원 (40.여.초중생 학부모)

오혜경 (39.여.서울 동덕여중 교사)

강방식 (31.서울 동북고 교사)

박원근 (서울 숭문고3)

조재현 (서울 대진고2)

이예진 (여.서울 반포고1)

한혜리 (여.서울 세화여중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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