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신, 10억미만 '자투리 펀드' 골머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4면

국내에서 운용 중인 펀드 세 개 중 하나는 규모가 10억원에도 못미치는 자투리 펀드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규모가 작을수록 불리해지는 채권형 펀드가 과반수를 차지해 투신사들의 운용 능력을 갉아먹고 있다. 채권은 최소 1백억원 단위로 거래되므로 이들 펀드는 정상적으로 자산을 편입하거나 내다팔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한 투신사 채권운용팀장은 "채권을 몇 억원이나 몇 천만원 단위로 사고 팔 수 없기 때문에 자투리 펀드는 포트폴리오(자산 구성)재편이 불가능하다"며 "펀드 수가 많아 매니저 한사람이 수십 개씩 맡다보니 관리도 제대로 못하는 형편"이라고 털어놨다.

이에 따라 투신권은 자투리 펀드의 통폐합을 추진하고 있지만 이들 중 대부분이 세금 우대 혜택을 받는 상품이어서 난항을 겪고 있다. 통폐합 후에도 세금 혜택을 부여해야 하는지를 둘러싸고 관계 당국의 입장이 엇갈리고 있기 때문이다.

◇ 자투리 펀드 평균 규모 2억5천만원=한국펀드평가에 따르면 지난 13일 현재 국내에서 운용 중인 7천23개 펀드 가운데 10억원 미만 펀드가 전체의 38.6%인 2천7백8개에 달했다.

반면 이들의 설정액은 모두 7천70억원으로 전체 펀드 규모(1백70조원)의 0.4%에 불과했다. 펀드당 평균 수탁액이 2억6천1백만원에 불과하다.

유형별로는 주식형(순수 주식형+주식 혼합형)이 8백97개, 채권형(순수채권형+채권혼합형)이 1천6백53개다. 초단기 상품인 머니마켓펀드(MMF)도 1백58개의 자투리 펀드가 남아 있다.

◇ 부실 운용 불가피=자투리 펀드가 많은 것은 대우사태와 세금우대형 장부가 펀드 때문이다.

장부가 펀드란 편입자산의 가치가 매입 당시의 장부가로 평가되는 것이다.

주식형은 1999년 대우사태 이후 투신사들이 채권형 펀드에 가입했다가 손해를 본 고객들의 손실을 만회해주기 위해 주식형으로 전환한 펀드가 대부분이다. 이 과정에서 일일이 고객 동의를 받다보니 펀드를 크게 만들 수 없었다.

채권형은 사정이 조금 다르다. 대부분 2천만원 한도 내에서 1년 이상 가입할 경우 이자소득세를 10.5%만 내는 세금 우대형 장부가 펀드다. 이들 펀드는 지난해 7월 채권 시가평가 제도가 도입되면서 존립 기반이 사라졌지만 세금혜택을 누리려는 고객들이 해지를 하지 않고 있다.

◇ 세금 문제 걸려 통폐합 난항=투신사들은 지난해부터 대대적인 자투리 펀드 통폐합에 나섰지만 세금 문제로 난관에 부닥쳤다.

국세청은 통폐합되는 펀드의 가입자는 기존 펀드를 해지한 뒤 신규 가입하는 것이어서 통폐합 뒤 1년 이상 경과해야 세금 혜택을 줄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투신사들은 가입자가 세금 혜택을 이중으로 받는 게 아니므로 관계 법령을 신축적으로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재정경제부와 금융감독원도 투신사의 운용능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펀드의 대형화가 필요하다며 투신권을 거들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자산 규모가 수 조달러인 미국의 펀드 숫자가 국내와 비슷한 8천개 수준"이라며 "펀드 통폐합을 쉽게 할 수 있도록 재경부와 함께 국세청을 설득하고 있다"고 말했다.

나현철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