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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간이 있는 풍경] 서양화가 박의순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53면

이번 데이트 상대는 서양화가 박의순(63)씨입니다. 박씨는 경기도 양평의 소문난 '욕쟁이 할머니'입니다.

잠깐 '화가' 박씨의 특기 하나를 소개할까요. 톡 까놓고 얘기할 수 없어 외둘러 말하면 남자들의 '그 무엇'을 잘 그립니다. 그런 야한 그림을 달력으로 만들어 선물하는 배짱 두둑한 사람입니다. 여자 누드 크로키도 일품이고요.

넉넉한 생김새처럼 인간적으로도 화통한데,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조차 막무가내로 쏟아내는 육두문자는 그녀의 '상표'입니다. 그런 행동이 전혀 밉살맞지 않아 누구든 당혹스런 한순간만 참아내면 단번에 그녀의 포로가 되기 일쑤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박씨를 소개하는 이유는 욕쟁이로서도,유니크한 소재를 즐겨 그리는 화가로서도 아닙니다. 바탕골예술관 주인인 '박씨 할머니' 얘기를 하려는 겁니다.

박씨는 2년 전 이곳을 오픈했습니다. 서울 대학로 바탕골소극장을 운영한 노하우를 바탕으로 지금과는 전혀 다른 지방문화를 개척하보자는 생각으로 말입니다.

물론 준비는 6~7년 전부터 시작했는데, 당시 그 계획을 듣고 기자는 갸우뚱했습니다. '미친 짓'이라는 생각도 들었죠. 그 때만 해도 서울 근교라서 누가 눈길을 줄 땝니까. 문화의 '탈(脫)서울'은 턱도 없은 얘기였지요.

그러나 박씨의 모험은 적중했습니다. 개관 2년 만에 "과연 성공할까"하는 주변의 우려를 비웃으며, 야외 복합공연장의 성공신화를 일구어냈으니까요.

벌써 손님 맞을 공간이 부족해 부랴부랴 집을 늘려 이를 기념하는 '우리 집이 커졌어요!'(11월 25일까지, 031-774-0745) 집들이 축제를 열 정도가 됐습니다.

하지만 박씨의 성공은 우연한 게 아니었습니다. "앞으로 가족 나들이 문화가 급격히 확산될 것이란 확신이 있었지요. 그런 컨셉으로 공간을 만들고 프로그램을 짠 게 잘 맞아떨어졌다고 봐요." 시대의 변화를 읽은 박씨의 선견지명이 읽혀지는 대목입니다.

살림집이 서울인 박씨는 매일 출.퇴근을 합니다. 하긴 늘 고향(양평은 그녀의 고향이다)에 가니 오죽 좋겠어요. 바탕골에 갔을 때 고사리 손잡고 온 가족들의 손금을 봐주며 야한 농담하는 할머니가 있으면 그게 바로 박씨인줄 아세요. 손금보는 실력이 꽤 신통하다나요.

정재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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