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현장 이 문제] 부산의료원 중병 '비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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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부산의료원(지방공사)이 대수술을 받지 않으면 회생하기 힘든 중병을 앓고 있다.

시민들을 치료하겠다는 공익 의료기관이 오히려 그 스스로 수술대에 올라야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됐다.

연간 수십억 원의 적자를 내면서도 조직 내부의 갈등은 끊이지 않고 8백여억원을 투입해 새 의료원을 지어놓고도 입주조차 못하는 실정이다.

◇적자 눈덩이=부산의료원은 지난해 62억원의 적자를 낸데 이어 올해도 그 이상의 적자를 피할 수 없다.

부산의료원은 올 초 부산시로부터 30억원을 지원받았으나 벌써 자금이 바닥나 납품받은 약값도 제대로 갚지 못하는 상태다.

의료원은 추가로 “30억원을 은행에서 빌려쓰겠다”며 부산시에 승인을 요청했으며 부산시는 당장 문닫을 수는 없어 승인해줬다.추가 적자분 역시 시민 세금으로 메워야 한다.

부산시는 영세민 ·마약환자 ·결핵환자 등을 위한 공익 진료차원에서 매년 30억원은 지원할 예정이지만 이 이상 적자를 내는 것까지 부담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부산시 김종년(金鍾年)공기업담당은 “공익 진료비(30억원)외에 추가로 30억∼40억원의 적자를 내는 것은 시민의 혈세를 낭비하는 것이며 민간 기업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부산의료원은 시민들로부터 신뢰를 얻지 못해 진료 환자 수도 비슷한 규모의 병상을 갖춘 병원에 비해 훨씬 적다.2000년 8월부터 올 7월까지 진료환자의 경우 M병원은 48만1천 명,S병원은 36만9천 명인데 비해 부산의료원은 28만7천 명에 불과하다.

◇새 의료원에 입주도 못해=부산의료원은 연제구 거제동에 5백 병상의 의료원 신축공사를 지난 8월 마무리했다. 이전을 위해 보상금 1백5억원 ·공사비 6백32억원 ·의료장비 구입비 1백21억원 등 8백87억 원이 투입됐다.

의료원은 8월21일부터 새 병원에서 정상 진료를 할 방침이었다.그러나 언제 옮겨 갈지도 예상할 수 없고 빨라도 올해 안에는 이전이 힘든 상황이다.

조직 내부의 갈등과 진료서비스 수준에 대한 불신이 주 원인이다.

노조(민노총 계열)의 원장 퇴진운동과 ▶의료진 집단사직 ▶의사 5명에 대한 사표 수리 ▶중앙노동위의 5명 복직명령 등으로 조용한 날이 없을 정도이다.

원장과 관리부장을 비롯한 경영진의 공백상태도 상당기간 이어졌다.특히 현재 구성원들로 새 병원으로 옮겨 가면 적자가 더 누적될 것이라는 우려 때문에 이전이 늦어지고 있다.

부산시는 ▶환자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고 ▶새 병원으로 옮겨 가면 관리비는 더 들고 ▶병원 수익은 적은데 고액 연봉자가 많은 것으로 진단,이런 상태서 새 의료원에 입주하면 시민들에게 실망만 더 안겨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새 의료원으로 가는 교통도 불편하다.지하철 역은 3㎞가량 떨어져 있고 노선버스는 28번 시내버스와 마을버스(연제9번)뿐이다.

◇정상화 방안 찾기 고심=부산시는 현재 구성원들에게 의료원을 맡겨 놓아서는 경영정상화는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래서 지난 10일 한태희(韓太熙) 의료원장의 사표를 수리하고 김명진(金明鎭)부산시의회 사무처장과 안본근(安本根)부산시노동정책과장을 의료원장과 관리이사로 겸임 발령하는 등 경영지원팀(8명)을 구성,파견했다.

경영지원팀에는 공기업 경영진단 전문업체인 한국자치경영협회 직원 2명도 포함돼 있다.

경영지원팀은 앞으로 3개월 안에 의료원 경영과 조직 체계 등 전반적인 문제점을 진단해 경영정상화 방안을 찾게 된다.

부산시 허남식(許南植)기획관리실장은 “이번 경영진단을 통해 병원 매각이나 위탁 경영 등 다각적인 정상화 방안이 나올 것”이라며 “이 상태로는 안되겠다는 것이 현재의 판단”이라고 말했다.

한편 부산의료원은 최근 몇 년 사이 감사원으로부터 2차례,행정자치부로부터 2차례,부산시의회부터 1차례 경영정상화 조치 권고를 받았다.

글=정용백 기자

사진=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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