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 엄마는 무엇입니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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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엄마의 힘’을 얘기할 때다. 전후 60년 만에 국제사회에 우뚝 선 대한민국의 오늘이 있기까지 그 저변에는 엄마의 힘이 있었다. 특별한 대한민국이다. ‘특별한 DNA’를 가진 우리 어머니들의 힘 덕분이다. 엄마의 힘은 ‘위대하다’는 단어로, ‘훌륭하다’는 말로 다 담아내지 못한다. ‘다르지만 감사했다’는 네 손가락의 피아니스트 이희아 엄마 우갑선씨, ‘내 아들 다리는 백만 불짜리 다리’라고 한 영화 ‘말아톤’의 주인공 배형진의 엄마 박미경씨, 아이의 재능에 꿈의 날개를 달아 준 김연아 엄마 박미희씨. 그들은 밖으로 보여진 엄마의 힘 중 일부다.

중앙SUNDAY가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엄마의 힘을 조명해 보는 ‘스페셜 리포트’를 기획했다. 본지 기자들이 각계 인사와 일반인들에게 e-메일 또는 전화 통화로 엄마의 힘에 대해 물었다. ‘엄마가 위대하다고 느꼈을 때’ ‘한국 엄마의 힘이 왜 강한지’ ‘나에게 엄마는 어떤 존재인지’ 등 5가지 질문을 담았다.

정운찬 총리와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 주호영 특임장관, 민주당의 이강래 원내대표, 정대철 고문, 박선숙·김영환 의원, 한나라당 전여옥·홍정욱 의원, 여자 프로골퍼 서희경씨, 선동열 삼성 라이온스 감독, 이을용 강원 FC 축구선수, 모철민 국립중앙도서관장, SK 와이번스 김성근 감독, 주부 김가혜(29)씨, 대학생 조은혜(20)씨 등 137명이 설문에 성실히 답해 줬다.

20대든 40대든 60대든, 그들은 살아오면서 “어머니가 위대하다”고 느꼈던 순간을 삶의 에너지원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피폐했던 1960~80년대 한국 상황과 얽혀 있었다. 가족의 생존을 위한 전쟁터에서 어머니는 좌절이 아닌, 미래를 얘기했다. 강인한 정신력을 심어 주고자 했다. 그래서 어머니는 ‘내가 살아가는 긍정의 힘’이고 ‘내가 갈 길’이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엄마가 유방암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 힘들게 적응한 유학 생활을 포기하고 곁에 있어 드리고도 싶었지만 어머니는 괜찮다고 했다. 내가 공부하는 동안 투병 과정에 관한 어떤 얘기도 해 주지 않았다. 5년여 힘든 싸움 끝에 완쾌 판정을 받았다. 공부하는 자식을 위해 하나도 내색하지 않고 암을 이겨 내신 어머니의 강한 정신력은 내게 큰 가르침이었다.”(홍정욱 의원)

선동열 감독도 비슷한 경험을 얘기했다. “96년 일본 진출이 결정됐는데 조금이라도 부담을 덜고 갈 수 있도록 끝까지 눈물을 감추려 하셨던 어머니를 잊을 수 없다. 어머니는 암 말기로 사형선고를 받고 계셨는데 생전에 아들을 마지막으로 보는 시간일 줄 아시면서도 내가 맘 편히 못 갈까 봐 끝까지 의연하셨다.”

조현중 문화재청 과장의 얘기는 누구나 한 번쯤 느꼈던 경험이다. “어린 시절 아파서 앓다가 지쳐 잠이 들었다. 아침에 눈을 떴는데 염려하며 뜬눈으로 밤을 새우며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어머니의 얼굴을 봤다." 어머니의 지극한 사랑, 따뜻한 힘을 느꼈던 기억들이다. 엄마의 힘에 있어 정수는 ‘희생’과 ‘모성애’였다. 자식을 위해선 어떤 희생도 감내했던 이가 엄마였다. ‘대한민국 엄마의 가장 강한 점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희생’이라고 답한 응답자가 65명이나 됐다. ‘모성애’라고 답한 이는 27명이었고 ‘인내’(12명), ‘생활력’(10명), ‘교육열’(10명) 순으로 답이 나왔다.

표현은 달랐지만 모성애나 인내·생활력 역시 희생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인지 137명의 사연을 담은 설문은 한편 가슴 저린 편지였다. 자식들은 애잔한 마음으로 엄마를 바라보고 기억했다. 정운찬 총리의 어머니는 희생하는 엄마의 전형에 가깝다. “가난 때문에 상경했지만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다. 게다가 아버님이 일찍 돌아가시고 다섯 자식을 건사하는 것은 전적으로 어머님 몫이 됐다.

그 뒤부터 어머님이 편하게 자리에 누운 모습을 보지 못했다. 늦은 밤까지 삯바느질을 하셨고, 새벽에는 얼음을 깨고 남의 집 빨래를 했다. 설핏 새벽에 잠이 깨면 어머님은 정화수를 떠놓고 기도를 했다. 굉장한 기원도 아니었다. ‘어린 자식들 건강하고 남들에게 크게 폐 끼치지 않고 살게 해 주십시오’라고.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찡하다.”

세대에 따라 엄마의 힘은 조금 다른 모습으로 비쳤다. 대학원생 손주연(27)씨는 “초등학교 때 외국에서 학교를 다녔다. 나는 영어를 했지만 엄마는 못했다. 선생님과 면담하는 날이 왔다. 부모가 영어를 못하면 면담을 안 할 수도 있었다. 근데 엄마는 학교에 가 손짓·발짓으로 선생님과 면담을 했다. 부끄럽고 힘들었을 텐데 딸을 위해 엄마는 그렇게 했다”고 말했다.

‘나에게 엄마는 OOO 다’는 항목에서는 ‘엄마는 연민’이란 답이 가장 많았다. 자신과 가족을 위해 희생한 어머니에 대한 안타까움이 자식들에게 깊이 배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주호영 장관 등 12명이 ‘연민’ ‘미안함’ ‘안타까움’ ‘눈물’이라고 썼다. 이어 ‘힘’이라고 답안 이가 8명이었다. 정대철 고문은 ‘용기와 자신감을 주는 힘’이라 했고 프로골퍼 서희경씨는 ‘에너지’라고 엄마를 정의했다.

그리고 엄마를 ‘고향’ ‘집’ ‘베프(가장 친한 친구)’라고 한 사람들도 꽤 있었다. 유명환 외교부 장관은 ‘인내심의 상징’, 박선숙 민주당 의원은 '아무리 해도 넘지 못할 높은산'이라고 했다. 선동열 감독은 ‘내 인생의 감독’이라고 했고, 사진작가 조세현씨는 ‘내 그림자’라고 썼다.

신용호 기자 nov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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