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문명 충돌을 막으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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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문명의 충돌은 막을 수 없는 것인가.

당대의 석학 중 한 사람인 이탈리아 볼로냐 대학의 움베르토 에코 교수(기호학)가 이 질문에 답을 던졌다. 에코 교수는 '서양의 우월성에 대해'라는 제하의 기고문에서 각 문명의 편협한 우월주의를 비판하고 문명 충돌을 막으려면 문명이 기초하고 있는 가치체계에 대한 상호 이해가 필요하다고 역설하고 있다.

다음은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 10일자에 실린 기고문 요약.

수세기에 걸쳐 세상을 피로 물들였던 종교전쟁은 모두 지나치게 단순화된 대립구도에 열광적으로 집착한 데서 비롯했다. 우리 편과 다른 편, 선과 악, 흑과 백 등이 그것이다. 서양 문명이 풍요하게 보인다면 그것은 서양 문명에 내재한 탐구와 비판정신이 그런 단순화의 해악을 극복하도록 가르치기 때문이다.

물론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었다. 나치즘과 파시스트 또한 분명 서양 문명의 일부라는 것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서양 문명의 이런 측면은 우리 또는 다음 세대에 뉴욕 테러가 재발하는 것을 막기 원한다면 모든 피부색의 사람들과 함께 논의해야 할 가장 훌륭한 주제다.

서양은 흔히 경제적 팽창주의 탓이긴 했지만 다른 문명들에 호기심을 보여왔다. 하지만 서양은 너무도 자주 다른 문명을 철저히 멸시했다. 예컨대 고대 그리스인들은 자신들의 언어를 쓰지 않는 다른 민족을 '말더듬이'라 부르며 야만인 취급했다.

19세기 중엽에 이르러서야 다른 문명을 야만적이고 원시적인 것으로 여기던 서구사회를 치유하려는 시도로서 문화인류학이 등장했다. 문화인류학의 목적은 서양 논리와는 다른 논리들이 존재하며 그것들은 멸시와 억압이 아니라 심사숙고할 가치가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문화인류학에서 배워야 할 진정한 교훈은 어떤 문명이 다른 문명에 비해 우월하다고 말하려면 비교의 변수들을 분명히 정해야 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문화인류학적 분석만으로는 문명의 우열을 논하기 부족하다. 변수란 각자의 뿌리와 기호.관습.열정.가치체계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발전된 과학기술을 들어 서양 문명의 우월성을 내세우는 사람들도 있지만 비행기나 자동차가 없더라도 오존층에 구멍이 없는 건강한 자연 속에서 살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변수를 역사에서 원용하기도 힘들다. 역사란 양날을 가진 칼이니까. 오사마 빈 라덴이나 사담 후세인은 서구문명의 사악한 적이지만 서구문명 내에도 히틀러나 스탈린 같은 인물들이 존재했다. 변수의 문제는 현재의 시점에서도 제기된다. 많은 사람이 금융거래의 비밀이 지켜지는 게 선이라고 믿지만 그 비밀이 테러 자금을 숨겨두는 데 이용된다면 그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변수의 문제는 이처럼 미묘하다. 우리는 이런 변수를 끊임없는 논의의 대상에 올려둬야 한다. 우리의 확신이 세워지는 토대인 이 변수들을 분석하고 토론하도록 교육기관은 가르쳐야 한다. 지금까지 서양은 다른 문명을 연구하는 데는 투자를 아끼지 않았지만 다른 문명이 서양 문명을 연구하도록 지원하는 데는 극히 인색했다.

나는 다른 문명의 원리주의에 대한 문화인류학적 연구가 자신들의 원리주의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더욱 효과적일 것이라 믿는다.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은 기독교적인 성전(聖戰)의 의미에 대해 연구할 것이고 그들은 이슬람의 성전에 보다 비판적인 시각을 갖게 될 것이다.

<움베르토 에코 르몽드紙 기고>

정리=이훈범 파리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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