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뒷북친 꽁치 협상… 러시아 배려만 기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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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러시아와 일본이 9일 남쿠릴 열도 주변수역에서의 제3국 조업 금지에 의견 접근을 봄으로써 내년부터 우리 꽁치 조업에 빨간불이 켜졌다. 세계 굴지의 꽁치 어장으로 우리 꽁치 어획량의 30% 가량을 차지하는 이 어장을 잃으면 꽁치 수급의 차질이 불가피하고 대일(對日)여론은 더 악화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홍승용(洪承湧)해양수산부 차관을 단장으로 한 정부 대표단을 이번 주말 러시아에 파견, 협상에 나서기로 했으나 궁지에 몰려 있는 상황이다. 쿠릴열도 4개섬 반환을 전후 최대의 외교과제로 보는 일본이 영유권 확보에 온힘을 쏟는 데다 러시아도 제3국 조업료를 훨씬 웃도는 일본의 '수산자원 보존 협력금'쪽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사태 해결의 열쇠는 러시아가 쥐고 있다. 이 수역을 실효(實效)지배하면서 조업 허가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일단 한.일 양국을 상대로 양다리 외교를 펼치고 있다. 일본의 손을 들어준 듯하지만 우리한테도 지난달 이래 네차례에 걸쳐 "기존의 어업 이익은 훼손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알려왔다.

정부가 "러.일이 설령 제3국 조업 금지에 합의해도 이것이 곧 우리의 조업권 상실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애써 강조하는 것은 이런 배경에서다. 또 러시아가 '실리'만 좇아 영토 문제에 대한 '명분'을 잃겠느냐는 희망 어린 관측도 있다.

정부는 이와 함께 기존의 어업 기득권은 보장되는 것이 국제 관례라는 점에 기대를 걸고 있다. 때문에 러.일 양국에서 "조업이 영유권과 관계없다"는 이해만 받아내면 조업의 길이 없는 것도 아니라는 분석이다. 정부는 최악의 경우 대체어장을 찾는 등의 대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번 사태에 대한 정부의 대응은 안이했다는 비판을 면할 수 없을 것 같다.

오영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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