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후진타오 직접 만나 ‘천안함 진화’ 하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3면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방중이 임박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중국 공안들이 2일 북한 신의주와 중국 단둥을 잇는 압록강 철교 주변에서 삼엄한 경계를 펼치고 있다. 이날 단둥시가 1급 경비체제를 가동한 정황도 포착됐다. [단둥 로이터=연합뉴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중국 방문은 천안함 침몰로 남북 간에 팽팽한 긴장이 감도는 상황에서 이뤄져 관심을 끈다. 김 위원장은 김일성 사망(1994년 7월)으로 집권한 이래 네 차례 방중했으나 이번에는 그 어느 때보다도 긴박하게 풀어야 할 숙제를 전용열차에 싣고 가는 형국이다. 정부 당국자는 2일 “지난달 초 방중이 임박했다는 첩보가 나왔지만 김 위원장이 동선 노출 등을 우려해 연기한 것으로 안다”며 “시기를 저울질하던 그가 더는 미룰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이 방중 결단을 내린 건 천안함 문제 때문일 것이란 게 당국자와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다. 지난달 30일 상하이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후진타오 중국 주석이 정상회담을 하는 자리에서 천안함 사태를 논의하는 등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직접 중국 지도부를 만나 북한의 입장을 설명하고 진화에 나서야겠다는 결론을 내렸을 수 있다는 것이다. 김연수 국방대학교 교수는 “이 대통령이 후 주석을 통해 천안함 사태와 관련한 메시지를 북한에 보낸 것이며, 이를 전달받은 김 위원장이 ‘상황이 생각보다 심각하다’고 느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중국 지도부가 “더 이상의 긴장조성 행위를 중단하라”고 압박하러 김 위원장을 불렀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김 위원장의 방중엔 6자회담 재개를 비롯한 북핵 문제도 중요 의제로 예상된다. 북한은 올 초부터 북·미 양자대화를 포함해 6자회담 복귀카드를 흔들었으나 천안함 사태로 실종됐다. 또 3일 뉴욕에서 개막되는 핵확산금지조약(NPT) 평가회의에서 “북한처럼 NPT를 임의로 탈퇴한 나라를 제재하자”는 논의가 추진되는 등 북한에 불리한 국제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이조원 중앙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에 따라 북한은 든든한 후견인 역할을 해온 중국의 지지가 절실해진 시점”이라고 분석했다.

김 위원장의 방중은 중국의 경제원조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올 초부터 ‘인민생활 향상’을 내걸었지만 지난해 11월 단행한 화폐개혁의 부작용으로 상황이 꼬였다. 한국 정부에 요청한 옥수수 1만t(40억원) 지원도 지연되는 가운데 쌀값 폭등을 막기 위해 군량미를 풀었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북한은 올봄 식량사정이 어려운 상황이다. 지난달 말 북·중 접경지역을 다녀온 정영태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은 중국에 나진항 개발을 맡기는 등 ‘믿을 건 중국밖에 없다’는 분위기가 팽배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의 방중은 상하이 엑스포에 대한 그의 개인적인 관심도 작용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김 위원장은 2001년 1월 상하이를 찾아 “천지개벽을 이뤘다”고 말했다. 83년 6월 아버지 김일성 주석을 따라 방문했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이 발전한 상하이의 현실을 목격하고 받은 충격을 공개 언급한 것이다. 정부 당국자는 “김 위원장은 이듬해인 2002년 경제관리 개선조치와 신의주 특구를 발표했을 만큼 상하이는 그의 머릿속에 깊이 자리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이 셋째 아들 김정은을 대동하고 방중해 중국 지도부와 후계 체제 논의를 할지 모른다는 관측도 나온다. 김연수 국방대 교수는 “북한이 최근 후계문제와 관련해 서두르는 행보가 엿보인다”며 이 같이 전망했다.

이영종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