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일성대학 독주 시대 "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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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북한에서 김일성종합대학의 독주시대가 끝나고 전문 분야로 특성화한 대학 출신의 활약이 두드러지는 새로운 경향이 최근 나타나고 있다.

물론 노동당의 핵심 부서인 조직지도부.선전선동부는 김일성대학 출신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당 경제 부서나 내각에서는 김책공업대학.정준택원산경제대학.국제관계대학 졸업생이 점차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것.

북한에서 정보화.과학화가 강조되면서 가장 주목받는 대학은 김책공업대학. 평양시 중구역에 위치한 이 대학은 1948년 9월 설립된 이후 금속.기계.체신.선박.전자.자동화.전기 등 공학기술 인력을 육성해온 명문 공업대학이다.

북한 언론들은 최근 각 경제 분야의 기술 개발과 설비 현대화에서 김책공대 졸업생들이 핵심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내각 금속기계공업성의 경우 김용남.한광복 부상(차관) 등이 김책공대 출신들이다. 金 부상은 지난달 30일 평양방송에 출연해 "금속기계공업성과 산하 단위를 포함해 거의 모든 책임 일꾼들과 골간 부서들이 김책공대 졸업생들로 꾸려져 있다"고 밝혔다. 오수용 전자공업상도 이 대학 출신이다.

정준택원산경제대학은 경제전문가 양성기관으로 유명하다.

행정.경제 부문에 진출해 오던 졸업생들이 최근에는 중앙.지방당, 인민무력부, 국가안전보위부, 인민보안성 등 권력기관에 진출하기도 한다. 이 대학에 다니다 97년 3월 남한에 온 박호삼(34)씨는 "북한 당국이 경제 회생 차원에서 이 대학 출신들을 경제기관뿐 아니라 당.정.군의 요직에 발탁하고 있다"고 밝혔다.

내각 외무성과 당 국제부는 국제관계대학(5년제) 출신들이 강세를 보여왔다. 이 대학은 60년 김일성대학 법학부 국제관계과가 외교관 양성교육기관으로 독립하면서 설립됐다.

1기 졸업생인 김용순 당비서를 비롯해 강석주 외무성 제1부상, 최진수 주중 대사, 장창천 외무성 라틴미주국장, 이형철 유엔대표부 대사 등이 이 대학을 졸업했다. 국제관계 대학 출신의 한 탈북자는 "이 대학에 입학하기는 김일성대학보다 더 힘들다"며 "그런 점에서 졸업생들의 자부심이 대단하다"고 말했다.

당.군 수뇌부를 양성하는 만경대혁명학원도 특수학교에 해당된다. 47년 10월 설립된 이 학원은 고등중학교 6년과 단과대학 2년 과정을 가르친다. 이곳을 졸업하면 김일성대학에 진학하거나 장교 및 당ㆍ내각 초급간부로 진출하기 때문에 주민들 사이에 '귀족학교'로 불린다. 전병호.최태복 당비서, 연형묵 국방위원 등과 김영춘 총참모장, 김일철 인민무력부장 등 권력의 핵심 인사들 대부분이 이곳 출신이다.

통일연구원 전현준(全賢俊)연구위원은 "그동안 북한의 최고 엘리트는 만경대혁명학원과 김일성종합대학 출신들이 주류였지만 최근 경제.외교.정보기술 분야를 중심으로 신흥 명문대 출신들이 고위직에 진출함으로써 고위 엘리트의 출신 대학이 다양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정창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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