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릴레이] 바비인형과 다이어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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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5면

바비 인형만큼 전세계 어린이들을 매혹 시킨 '여성' 도 드물다. 1959년 뉴욕 장난감 전시회에 처음 소개된 이후 지금까지 팔려나간 바비 인형은 무려 4억5천만개.

지금 이 순간에도 전세계에서 2초에 한 개꼴로 팔린다. 열살 이하 미국 어린이 한 명당 평균 8개의 바비 인형을 가지고 있을 정도다. 지금까지 팔린 바비 인형들이 양팔을 벌리고 늘어선다면 지구를 3바퀴 돌고도 남는다니 그 인기는 상상을 초월한다.

바비 인형을 사람으로 치자면 그녀의 신체 사이즈는 어떻게 될까□ 39-19-33. 『몸 : 숭배와 광기』의 저자 발트라우트 포슈의 표현을 인용하면 '괴물도 이런 괴물이 없다' . 허리는 병적으로 가늘고, 유방은 허리로 지탱할 수 없을 만큼 비대하다. 다리는 발육 부진 수준이다.

페미니스트들은 오래 전부터 바비 인형이 담고 있는 메시지의 위험성을 경고해 왔다. 바비 인형을 가지고 노는 여자아이들은 여성의 아름다움에 대한 기준을 자연스레 바비에게서 찾게 된다.

여성들이 저지방 다이어트에 강박적으로 매달리는 데에는 '가늘고 긴 다리와 잘록한 허리, 풍만한 가슴' 이라는 허상에 어렸을 때부터 세뇌 당한 탓도 있을 것이다. 바비의 화려한 삶 역시 여자아이들을 지나치게 외모에 신경쓰도록 만든다.

바비가 등장하기 전까지 아기인형을 안고 쓰다듬으며 엄마의 사랑을 흉내냈던 아이들은 이제 바비에게 새 옷을 입히고 장신구를 달아주면서 하루를 보내게 됐기 때문이다.

몸에 대한 광적인 집착을 부추긴다는 점에서 패션 잡지들도 바비 인형 못지 않다. '지방 노폐물' 이라는 단어를 처음 만들어낸 것도 패션 잡지 「보그」 라는 사실은 이를 증명한다. 아주 일상적이며 자연스러운 몸의 한 부분이었던 지방이 일순간 제거해야할 독소로 변해버린 것이다.

몸에 대한 상업주의가 극단적인 양상으로 치닫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신문마저도 이를 부추기는 경우가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신문 건강면에 종종 등장하는 '비만 측정 공식' 이다. 신장(㎝)에서 1백을 뺀 후 0.85(남성은 0.9)를 곱한 값이 이상적인 체중(㎏)이라는 이 공식은 프랑스 외과의사였던 브로카가 1백년 전에 만들었다.

신체 발육의 개인차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이 공식은 나이에 따라 몸무게가 늘어간다는 일반적인 과학 상식마저 간과하고 있다.

나이가 들면 몸에 필요한 기본 에너지가 줄어든다. 따라서 영양 섭취나 활동량이 예전과 비슷하다 하더라도 10년에 3㎏ 가량 몸무게가 늘게 된다. 연령마저 고려하지 않은 획일적인 체중 기준이란 얼마나 비과학적인가?

패션잡지에서부터 TV.광고는 물론 아이들의 장난감까지 보통 사람들을 '비계 덩어리' 로 만들고 있는 현실에서 신문만은 사람들에게 스트레스를 주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 사회에서 지방은 성인병보다 스트레스나 다이어트 강박증의 원인으로 더 유해하기 때문이다.

정재승 고려대 물리학과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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