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중경 경제수석 ‘NO’라고 말하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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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호 02면

‘돌아온 장고’인가. 최중경 청와대 경제수석 얘기다. 힘센 자리로 돌아오자마자 총질을 해대는 것 같아서다. 그가 며칠 전 청와대 홈페이지에 글을 올렸다. 수석이 된 후 첫 일성이다. 보금자리주택은 좋은 정책이라고 설명한 후 이렇게 썼다. “보금자리주택 공급으로 민간분양시장이 위축될 것이란 지적은 지나친 우려다.”

김영욱의 경제세상

처음엔 내 눈을 의심했다. 30년 가까이 경제관료를 하는 사람이 설마 이렇게 썼으랴 싶어서였다. 다시 들여다봤지만 사실이었다. 주택도 상품이다. 품질이 엇비슷한 상품이 두 개 있다고 하자. 하나는 반값 주택이고, 다른 하나는 온 돈 줘야 하는 집이다. 당연히 사람들은 반값 주택에만 몰린다. 게다가 공급 물량도 상당하다. 10년간 150만 호다. 분양분 70만 호만 따져도 연평균 7만 가구다. 민간 분양시장이 타격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인데도 경제수석만 부정한다.

보금자리는 청약저축 가입자, 민간 주택은 청약예·부금 가입자에게 공급된다는 게 그의 논리다. 수요층이 다르니 영향이 없다는 주장이다. 천만의 말씀이다. 못 믿겠다면 얼마 전 보도된 한 은행의 설문조사를 참조하라. 주택 구입 계획이 있는 2000여 명에게 물었더니 82%가 보금자리주택이 구입 결정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답했다. 보금자리 청약 자격이 없는 유주택자 역시 77%가 영향을 받고 있다고 했다. 굳이 설문조사할 것도 없다. 상식 있는 사람이라면 금방 알 일이라서다.

미분양 문제가 전적으로 보금자리주택 탓이라는 얘기는 아니다. 건설업자의 잘못된 경영 판단과 과잉공급이 ‘주범’이다. 미분양 책임 역시 건설업자가 대부분 져야 한다. “건설업자의 도덕적 해이에 대해 엄정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대통령 지적은 옳다. 그렇다고 보금자리주택이 면책돼선 안 된다. 미분양에 영향을 미친 건 사실이다. 미분양 대책을 굳이 내놓겠다면 보금자리주택 문제도 고려돼야 한다. 공급 일정과 규모를 재조정하는 것도 한 방안이다. 하지만 대통령의 핵심 사업이니 그럴 수도 없다. 그러니 손으로 해를 가릴 수밖에. 이게 사실이라면 딱한 심정이야 이해되지만, 그래도 공직자의 올바른 처신은 아니다.

이러니 정부가 내놓는 부동산 정책이 변변할 리 없다. 열흘 전 발표한 미분양 해소책이 그렇다. 5조원을 투입해 건설업체로부터 미분양주택 4만 가구를 사들이겠다는 내용이다. 건설업자 살리기에 정부가 나섰다는 얘기다. PF대출이 부실화되면 금융사가 흔들리니 금융사 살리기 목적도 있다. 전형적인 전마불사(全馬不死)다. 모두 다 살리겠다는 정책이다. 대마불사(大馬不死)의 부작용도 엄청난데 전마불사야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주범’이 건설업자라는 대통령 말과도 어긋난다. 원칙대로 구조조정하는 게 책임을 제대로 묻는 길이라서다. 정부는 구조조정의 파장을 면밀히 분석해 부작용이 경제 전반으로 번지지 않게끔 하면 된다. 자동차가 과잉 공급돼 재고가 쌓일 때도 정부가 앞장서서 사줄 참인지 묻고 싶을 정도다.

게다가 정부는 미분양 예방시스템까지 만들겠다고 한다. 미분양 뒤치다꺼리하는 악순환을 방지하기 위해서란다. 어처구니없는 발상이다. 정부가 주택 공급의 적정 규모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고 확신하지 않고서야 나올 수 없는 얘기라서다. 이게 불가능하다는 건 스스로 더 잘 알지 않을까. 미분양 해소책을 발표한 후 아무래도 뒤가 켕겨서 내놓은 궁여지책이라는 느낌이다. 이러다간 어느 지역에는 아파트가 많으니 다른 지역에 건설하라며 정부가 지시하는 정책도 나올 것 같아 걱정된다.

보금자리주택은 처음부터 설계가 잘못된 정책이다. 친서민 정책의 일환이라면 150만 호 전부를 임대하는 게 옳다(지난해 8월 23일자 경제세상). 그랬더라면 미분양 문제도 다소 완화됐을 게다. 경제수석이 할 일은 분명하다. 사실을 왜곡할 게 아니라 보금자리주택은 원점에서 재검토하자고 대통령에게 건의해야 한다. 미분양 해소책은 거둬들이고 구조조정해야 한다고 해야 한다. ‘노(No)’라고도 말할 줄 아는 경제수석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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