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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영 칼럼] 국민 퀴즈 경시대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정보 경쟁력 강화를 위한 국민 퀴즈 경시대회가 열려 다음과 같은 문제가 나왔다고 치자.

1. 굵직한 비리사건이 터졌다 하면 그 배후로 빠짐없이 거론되는 인물을 아래의 보기에서 하나만 고르시오.

①A씨 ②B씨 ③C씨 ④K씨

2. 굵직한 비리사건이 터졌다 하면 그 배후로 빠짐없이 거론되는 인물을 아래의 보기에서 둘만 고르시오.

①A씨 ②B씨 ③K1씨 ④K2씨

출제를 계속할 수도 있으나 잠시 여기서 멈추겠다. 추석 민심이라는 것이 뭐 별것이겠는가?

여럿이 둘러앉아 이 얘기 저 얘기 나누다 보면 은연중 한 군데로 모이는 것이 있고, 이 집 저 집에서 그것들이 붇고 쌓이면 그게 바로 민심일 터이다.

신문 보도에 따르면 이번 추석에 좌중을 휩쓴 화제는 단연 정치 부패와 경제 불안이었다. 조상 공경이나 자녀 교육 따위는 아예 발언권 신청도 못한 것 같았다.

*** 될대로 되라式 추석 민심

클린턴이 그 추한 행실에도 불구하고 중임 임기를 마친 것은 당시 미국 경기가 워낙 좋았기 때문이란 외신 논평이 생각난다. 같은 잘못을 보아도 지갑이 두둑할 때는 너그럽게 되고, 먼지만 풀풀 날 때는 약이 오르는 법이다.

지금 우리 사회가 그렇다. 경제는 엉망인데 정치마저 난장판이어서 민심이 그야말로 '될 대로 되고' 있다. 이번에 터진 '이아무개 게이트' 만 해도 그렇지 않은가?

투신사 직원이 1조6천억원의 우체국 예금을 회사로 유치하여 16억원의 성과급을 챙기고, 건설사 대표가 받은 비리 무마 공작금 42억원 가운데 '삥땅' 17억원을 제한 15억원이 정치권 주변에서 '행방 묘연' 이라니, 전기 요금 몇푼 올랐다고 한숨 쉬는 서민의 가슴이 얼마나 시릴 것인가?

검찰에 긴급 체포된 피의자가 하루 만에 유유히 풀려 나오고, 조폭의 협박편지가 백주에 국회의원들에게 배달되는 - 그래도 경찰의 보호는 사절한다는 - 이 뒤죽박죽의 세태에 주차위반 딱지 한장으로 발발 떠는 서민의 가슴이 얼마나 저릴 것인가?

자그마치 2백50억원대의 주가조작이나, 6백80억원의 횡령이 말단 행원의 정보나, 졸부 회장의 잔머리나, 조폭 기업가의 주먹만으로 이뤄지지 않을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자꾸 '몸통' 이니 '권력의 실세' 니 하는 얘기가 나오는 것이다. K든 KK든 하도 여러번 들어서 이제 알 만한 사람은 대강 다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을 손댈 수 있는 사람이 오직 '한 분' 뿐이라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본인들로서는 실명 공격보다 비열한 이 '정치 음모' 가 아주 억울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진상을 파헤쳐 그 억울함을 벗겨야 하는데, 그럴 힘도 오직 그 '한 분' 에게 있다.

3. 굵직한 비리사건이 터졌다 하면 빠짐없이 거론되는 기관 중에 억울하다고 생각되는 곳을 아래의 보기에서 하나만 고르시오.

①검×청 ②국×청 ③국×원 ④금×원 ⑤없음

이들의 연루가 자의적인지, 타의적인지 그 내막은 전혀 모른다. 그러나 며칠 전에 물러난 건설교통부 장관의 경우를 보면 대강 짚이는 것이 있다.

그의 장관 발탁이 모종의 '탁월한' 능력 때문이라는 설도 있고, '근육통' 충성에 대한 배려 때문이라는 설도 있었다.

설사 능력에 따른 임명이더라도 마침 그 시기가 충성에 의한 발탁으로 '오해하게' 만들었다. 이런 오해의 암시가 당자들을 마취시키는 한, 자진이냐 강제냐의 구별은 별 의미가 없을 것이다. 역시 그 '한 분' 의 결단으로 풀어야 할 일이다.

*** 국회의원 반으로 줄이면

지난달 중국 취재 중에 한국 기업인과 동포 기업인을 여럿 만났다. 여출일구(如出一口)의 탄식은 경제가 아닌 정치로 쏟아졌다. 경제 애로에 돌파구를 여는 일은 자신들의 몫이라고 했다. 그러나 돕지는 못할망정 정치가 발목을 잡는 이런 상황에서는 손과 발에 맥이 풀린다는 것이다.

취재원 보호 때문에 익명으로 전하거니와, 이런 '무엄한' 언사를 접한 것은 한 점 거짓 없는 사실이다. "국회의원을 반으로 줄이면 나라가 두 배로 좋아질 겁니다. " 그게 어디 국회의원뿐이랴!

4. 위에서 거론한 '한 분' 은 누구를 가리킨다고 생각하는지 아래의 보기에서 고르시오.

①대법원장 ②국무총리 ③감사원장 ④참모총장

어이구, 이것은 어쩐지 출제가 잘못된 것 같다.

정운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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