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달중 교수의 정치 프리즘] 제왕적 통치·불감증 공화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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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제왕적 통치의 말기에 터져나오는 각종 스캔들은 결코 우연의 산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대체로 권력에 기생해 형성된 부패의 한 단면으로 나타나는 것이 일반적 현상이다.

일찍이 마오쩌둥(毛澤東)은 이러한 제왕적 통치체제의 문제점에 대해 유명한 '과학적 결론' 을 내린 바 있다.

'사회주의 혁명을 주도하는 세력들은 항상 부르주아 적들을 찾아 헤매고 있지만, 사실 부르주아 적들은 다른 어느 곳도 아닌 바로 공산당 권력의 핵심에 포진하고 있다' 는 것이었다.

그에게는 바로 이 권력핵심이 국정운영을 파탄시킨 문제의 진원지였다. 이 때문에 부패를 척결하면 공산당이 망하고, 부패를 척결하지 않으면 나라가 망한다는 유명한 경구가 중국에 유행하기에 이르렀다.

*** 내부에 기생하는 비리

그러나 불행하게도 마오쩌둥은 자신의 '과학적인 결론' 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문제들이 바로 자신의 제왕적 통치 때문에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제왕적 통치가 부패된 권력의 핵심을 비호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던 것이다. 정치학적으로 말하면 바로 제왕적 통치 때문에 권력 핵심들의 전횡을 감시하고 감독할 국가체제가 무너져 내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 터지고 있는 각종 스캔들은 바로 마오쩌둥의 문제들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듯하다. 민주적 통치자 밑에서 이러한 현상이 일어난다는 것 자체가 정말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개혁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개혁장정을 가로막고 있는 반 개혁 세력들은 다름아닌 권력 핵심에 있다' 는 '과학적 결론' 을 뒷받침하기라도 하듯 지금 우리는 이용호 게이트로 대표되는 권력 기생(寄生)적 비리의혹에 긴장하고 있다. 자칫 잘못하면 정권적 위기를 넘어선 국가적 위기가 초래될지도 모르는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위기 의식은 집권 여당의 지도그룹 내에서도 강하게 표출되고 있다.

한화갑 의원은 태풍이 몰려오는데도 위기를 느끼지 못하고 있는 권력의 핵심에 대해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또 김근태 의원은 문제의 진원지가 권력의 핵심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핵심의 전횡을 감시.감독해야 할 국가체제가 무너져 내리고 있는 현상을 경고하고 나섰다.

권력의 핵심과 연결된 검찰과 정보기관, 경찰, 그리고 국세청이 하나같이 연루 의혹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여론조사를 들먹일 필요도 없이 '국민의 정부에 대한 기대가 실망과 분노로 바뀌며' 민심이반이 가속화하고 있음을 우리는 피부로 느끼고 있다.

아마도 국가 위에 군림하며 권력을 사유화한 권력 핵심들의 눈에는 이러한 문제의 본질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니 애써 외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개혁 깃발을 끌어내리기 위해 개혁 깃발을 휘두르고 있는' 부패 세력들이 바로 자신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 다름아닌 제왕(帝王)의 위기의식 불감증이다.

사유화된 권력 핵심을 해체하지 않으면 개혁이 무너질 뿐만 아니라 나아가서는 나라까지도 무너질지 모른다는 위기의식을 제왕께서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 과연 누가 감시할 것인가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통치형태는 개혁적 이념과 복고적 연(緣)줄의 모순적 복합체에 다름 아니다. 개혁과 복고의 모순 속에 처음부터 '개혁 깃발을 끌어내리기 위해 개혁 깃발을 흔들어대는' 봉건적 권력 핵심의 전횡이 잉태되고 있었다.

이 때문에 '국민을 위하여 존재한다' 는 주장에도 불구하고 결코 '국민에 의해 영향을 받지 않는' 제왕적 통치체제가 탄생하게 되었던 것이다.

마오쩌둥의 결론처럼 제왕적 통치체제의 가장 심각한 문제점은 바로 누가 이 권력의 전횡을 감시하고 통제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金대통령도 지금 마오쩌둥의 함정에 점점 빠져들고 있다. 이 봉건적 권력 핵심의 전횡 때문에 개혁 깃발이 부패의 이익 깃발에 의해 갈기갈기 찢겨질 위험에 처해 있는 것이다. 제왕적 통치체제의 문제점에 대한 대책이 시급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장달중 <서울대.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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