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 미국에 유화 눈짓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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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이슬라마바드=김석환 특파원, 워싱턴〓김진 특파원] 테러사건의 배후로 지목된 오사마 빈 라덴을 넘겨줄 수 없다며 강경하게 버티던 아프가니스탄의 집권 탈레반 정권이 조심스럽게 태도를 바꾸고 있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근거의 하나는 탈레반측이 빈 라덴에게 자진출국을 직접 권유했다는 점이다. 압둘 살람 자에프 파키스탄 주재 아프가니스탄 대사는 27일 "빈 라덴은 아프가니스탄 울레마(이슬람 지도자 회의)에서 자신에게 자진 출국을 권유하기로 결정했다는 사실을 전달받았다" 고 밝혔다.

자에프 대사는 이날 이슬라마바드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빈 라덴이 울레마의 권고내용과 이를 탈레반 최고 지도자 모하마드 오마르가 승인했다는 사실을 접수했다" 고 말했다.

그는 "빈 라덴은 현재 실종상태가 아니지만 일반인들과 접촉은 안된다" 고 말해 탈레반 지도부가 그의 행방을 알고 있으며 직.간접적인 접촉을 유지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자에프 대사는 그러나 울레마 회의의 출국 권고 결정을 전달받은 빈 라덴이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는 언급하지 않았으며 탈레반이 그와 어떤 방식으로 접촉하고 있는지도 밝히지 않았다.

탈레반의 태도변화는 미국의 인권운동가인 제시 잭슨 목사의 중재요청을 받아들인 대목에서도 읽을 수 있다. 26일 잭슨 목사는 "평화사절단을 이끌고 파키스탄을 방문해달라" 는 초대장을 파키스탄 주재 아프가니스탄(탈레반 정권)대사관의 대변인이 전문(電文)으로 보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자에프 대사는 "우리가 잭슨 목사를 초청하진 않았다" 며 "그가 중재를 제의했고 탈레반 지도자 오마르가 이를 받아들였다" 고 말했다.

그러나 미국은 탈레반의 이런 입장 변화와 잭슨 목사의 중재에 부정적인 견해를 표명하고 있다. 미 정부는 잭슨 목사가 탈레반측을 만날 경우 정부가 테러리스트를 보호하고 있는 집단과 협상을 시도한다는 인상을 줄까 봐 잭슨의 중재를 반대하고 있다.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은 27일 "그의 여행은 자유" 라면서도 "그러나 미국은 탈레반측과 협상할 게 없기 때문에 잭슨 목사가 그들과 접촉해봤자 아무 것도 해결할 수 없다" 며 반대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이에 따라 미국에선 빈 라덴의 인도 같은 극적인 양보를 탈레반에서 얻어낼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잭슨 목사가 결국 포기할 것이라는 관측과 과거 국제분쟁을 중재한 경력으로 보아 일단 시도는 할 것이란 분석이 팽팽히 맞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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