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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칼럼] 카우보이의 반성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3면

"소는 순진하고 슬퍼 보이는 커다란 눈망울을 가진 초식 동물이라는 가면을 쓰고 있지만 무시무시하고 수완이 뛰어난 살인마다. "

혹시 광우병 얘기가 아니냐고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아직은 그 얘기를 꺼낼 차례가 아니다.

"모든 종류의 동물이 (미국의) 서부를 지배하는 소 밑에서 신음해왔다. 토끼는 은신처와 먹거리를 제공하는 초목의 부족으로 인해 위험에 빠져 있다. 개구리.두꺼비와 곤충은 축우가 메마르게 만들기 이전의 풍부하고 축축했던 흙을 그리워한다. 멧돼지는 풀과 나무 열매와 딸기류 열매를 빼앗겼다. 물고기는 소가 오염시킨 개울과 강에서 죽어 나간다. 고라니와 영양은 축우가 퍼뜨린 박테리아 때문에 생긴 여러 가지 질병으로 죽어간다. "

이쯤 되면 다윈의 적자생존 강의나 『내셔널 지오그래픽』이 촬영한 '동물의 세계' 한 대목으로 착각할 법도 하지만 그것도 천만의 말씀이다.

그 박테리아 때문에 "사람들은 심장 발작을 일으키고 당뇨병과 암에 걸린다" 는 대목에 이르면 완전 오리무중이리라.

하워드 리만은 『성난 카우보이』(문예출판사.2001)에서 그렇게 썼다(1백37쪽). 그의 카우보이는 억세고 당당하고 고독하고 독립심 강한 그런 낭만적인 모습이 아니다.

오히려 "탐욕스럽게 토지를 남용하여…1930년대 미국 서부의 대평원에 '흙먼지 폭풍' 재앙 같은 생태적 대이변을 불러일으키는데 한몫을 한 연방 재산의 강탈자" (1백65쪽)로 나타난다. 그 먼지 폭풍 지대(dust bowl)는 존 스타인벡이 『분노의 포도』를 쓴 배경과 소재가 되기도 했다.

소가 '살인마' 로 변하고, 카우보이가 '강탈자' 가 되는 이변은 사람들이 비프스테이크를 좋아하기 때문이란다.

우리의 왕성한 식욕이 목축과 목축업자의 이윤 동기를 자극하여 이처럼 자연과 생태계 파괴를 선동했다면, 그 해결책은 이미 문제 속에 제시된 셈이다. 육식 포기와 채식주의가 그것이다.

*** 순진한 눈망울의 살인마

솔직히 고백하건대 채식주의니 뭐니 하는 주제는 나의 관심사나 독서 취향 밖의 일이었다. 그런 화제는 미용이니, 건강이니, 장수니 하며 유복하게 세월 보내는 사람들의 사치스런 소일거리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책을 몇 장 넘기니 그게 아니었다.

할아버지부터 대대로 축산업자이던 저자가 문득 생업을 포기하고, 환경 운동가와 채식주의자로 '변절하게' 된 기이한 운명과 신앙을 고백한 것이었다. 그렇다고 질력나는 공해 방지나 환경 보호 설교 따위로 독자를 따분하게 만들지도 않는다.

광우병에서 다이어트까지 우리 일상의 심각하고 심란한 문제들을 적당한 재미와 적당한 의미를 섞어 독자들에게 경쾌하게 전하고 있다. 우선 재미있고, 그리고 유익하다면 일단 책의 의무는 다한 것 아닌가□

*** 가축이 가축을 먹는 이변

저자는 그 짜증나는 경제학을 이렇게 '날씬하게' 강의한다. 쇠고기 1파운드를 생산하는 데는 곡물 16파운드가 필요하다.

다시 말해 쇠고기 4백53g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32명이 하루 먹을 곡물을 소에게 먹여야 한다. 그러니까 고기가 많을수록 굶는 사람이 늘어난다는 결론이 나온다.

실로 미국 농경지의 85%가 사료 생산에 쓰이고 "멕시코에서 생산되는 곡물은 사람보다 축우에게 더 많이 먹힌다" (1백82쪽). 또 있다.

감자 4만5천파운드, 당근 3만파운드, 토마토 1만5천파운드를 수확하는 땅 1에이커에서 쇠고기는 기껏 2백50파운드를 획득할 뿐이다. 사람이 직접 곡물을 먹는 대신, 그만한 곡물을 소에게 먹이고 그 소를 사람이 다시 먹음으로써 우리는 곡물이 본래 지녔던 단백질의 90%, 탄수화물의 99%, 섬유질의 1백%를 잃고 만다. 아주 밑지는 장사다.

밑지는 것이 어디 장사뿐이랴□ 우리 건강도 있다. 육류 섭취는 암.심장병.당뇨병.고혈압.골다공증.발기부전(!)의 주범이어서 "담배가 사람을 죽이듯이 고기가 우리를 죽인다" (23쪽)는 것이다.

사람이 가하는 생태계 파괴도 엄청나지만, 소가 파괴하는 자연도 엄청나다. 초지에 뿌리는 농약과 비료와 화학 약품의 폐해는 말할 것도 없고, "브라질이 수출하는 햄버거 하나 때문에 55제곱피트의 다우림을 벌채해야" (1백80쪽) 한다니 말이다.

그런데도 기를 쓰고 고기만 먹으러 들어 온갖 부작용이 다 나타난다. 광우병만 해도 "가축이 사람들 때문에 동족을 서로 먹던 야만 행위" (9쪽)의 소산이고, 생명공학의 탈선이 던지는 잠재 위험은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햄버거와 핫도그.아이스크림을 줄이자는 저자의 권고를 가볍게 여기는 독자들에게 그는 "당신은 내가 좀 돌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26쪽)고 미리 쐐기를 박는다.

중년의 바람둥이 논설위원 닉 놀테와, 경쟁지의 청순 가련형(?)맹렬 여기자 줄리아 로버츠가 취재 경쟁을 벌이는 '아이 러브 트러블' 이란 영화가 있다.

그저 그런 코미디로 시작하더니, 갑자기 성장 촉진 홀몬을 주사한 소와 우유에서 치명적 독성이 검출되자 그 개발을 반대하는 학자를 살해하고 사실을 은폐한다는 심각한 내용으로 발전했다.

이 영화를 흥미있게 보셨거든 이 책의 제6장을 읽어보시기 바란다. 고유명사만 다를 뿐 표절 시비가 날 정도로 스토리가 똑같기 때문이다.

고기 주린 사람에게 채소가 좋다는 설교가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다. 그러나 '미친' 카우보이로 살다가 '성난' 카우보이로 변한 저자의 반성문은 꼭 한번 읽어볼 만하다.

정운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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