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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라이스 국무팀이 펼칠 미국 외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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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파월 국무장관이 물러나고 콘돌리자 라이스 안보보좌관이 지명되는 등 조지 W 부시 2기 정부 외교팀의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파월 장관과 함께 지일파로서 미.일동맹의 강화를 위해 노력해오던 아미티지 부장관도 사임했다.

파월 장관의 사임으로 미국의 외교안보팀은 좀더 보수성향의 한목소리를 내는 일체성을 보일 가능성이 커졌다. 선거의 압력에서 자유로워진 부시 대통령은 일체화된 행정부를 구성해 남은 4년 임기 안에 역사적인 업적을 쌓으려 할 것이다. 라이스 보좌관은 부시 대통령의 신임이 두텁고 국무부.국방부.국가안전보장회의 등의 의견을 총괄하는 조정자로서의 역할을 해 왔다. 흑인여성으로 대학교수와 부총장 경력의 수재로서 실용적이고 전략적인 보수성향의 러시아 전문가다. 경력으로 보아 외부 이익집단과의 연계가 깊지 않고 부시 대통령의 뜻에 따라 단호하게 행동할 수 있는 입장이다.

2기 정부의 최대 과제는 대테러 전쟁이고 국가이익 측면에서의 국가전략은 패권유지 강화다. 외교안보정책의 방향은 네오콘(신보수주의자)의 영향력이 얼마나 강력해지는가와 외교전략적으로 다자주의를 어느 정도 가미하는가에 달려 있다. 신보수주의가 강해질 경우 도덕적 우월주의에 기독교 신념을 더해 악의 집단과 싸우는 대테러 전쟁이 패권주의적 이익과 합치할 수 있다.

패권주의 노선을 채택할 경우 미국은 세계의 자원과 전략적 요충지를 차지하고 경쟁국들이 도전할 만큼 성장하지 못하도록 사전에 무력을 동원한 선제공격도 감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석유자원의 중동과 해양수송로의 남중국해 등이 전략적 요충지다. 힘의 전이(Power Transition) 이론에 의하면 급성장하는 중국은 도전자로 또한 확대되는 유럽연합(EU)은 잠재적 경쟁자로 간주되고, 대만문제는 미.중 간의 패권전쟁으로 비화될 수 있다.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일본이, EU를 견제하기 위해 영국이 미국에는 필요하다. 따라서 강력한 미.영동맹과 미.일동맹은 미국 외교에 필수적이다. 일본은 헌법 개정, 군사력 증강,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 등을 목표로 미.일동맹을 강화하고 미 패권에 편승하는 외교전략을 취하면서, 국제협조의 다자체제에 동참하고 국제연합을 중시하는 외교정책도 취하고 있다.

때문에 부시 2기 외교는 현실주의적 힘의 분포에 의거해 미국 패권에 걸맞게 국제질서를 재편하려는 데 더 초점을 두게 될 가능성이 크다. 구체적으론 미국의 패권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국제기구와 국제기준(레짐)을 개편하는 것이다. 유엔의 개혁은 오래전부터 논의돼 왔으나 다수 약소국들의 반대로 지지부진하다. 결국 미국은 유엔을 무시하고 필요에 따라 동맹국들과 협력하고 때로는 국가이익에 따라 일방주의적 외교정책을 행사해 왔으며 이런 경향이 더 커질 것이다.

미국이 대테러 전쟁에 승리하기 위해선 동맹국들의 도움이 필요하고 국제협조의 다자외교전략이 필요하다. 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PSI) 및 유엔 안보리 결의를 위해 국제 협조가 필요하고, 자유주의적 제도주의 입장에서 국제기구 및 국제 레짐의 규칙을 따르면서 유럽.중국 등과 협력해 글로벌 이슈에 공동으로 대처해 나가야 한다. 미국에는 같이 싸워줄 혈맹국이 필요하다.

이와 관련된 쟁점 중 이라크전쟁은 진행 중이고 이란은 핵사찰을 받아들였고 리비아는 핵을 폐기했다. 남은 것은 북한이다. 리비아.이란.이라크의 모델 중 어느 쪽을 선택할지는 북한에 달려 있다. 북핵문제는 6자회담을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될 가능성이 있다. 미국은 가공할 억지력으로 거시적 압력을 조성해 감찰하고, 한국과 일본은 북한과의 교류협상을 통해 긴장완화를 하면서 경제적 지원의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을 설득한다. 뒤에는 북한인권법으로 준비된 유엔 안보리가 경제제재의 카드를 들고 대기하고 있다. 북한이 무모한 행동을 하지 않는 한 북핵문제는 오히려 평화적으로 해결될 가능성이 크다.

김성철 세종연구소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