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논단] 이슬람 국가와 테러리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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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지난주 미국에서 발생한 연쇄테러 참사의 배후세력을 소탕하려면 우선 테러리즘의 역사를 이해해야 한다. 테러가 고통과 역경으로 점철된 중동에서 아프가니스탄을 거쳐 미국까지 건너가게 된 경위 말이다.

오사마 빈 라덴 같은 사람이 어떻게 끔찍한 테러의 배후가 된 것일까. 그는 다른 아랍인 민병대원들과 함께 1980년대에 미 중앙정보국(CIA)의 지원을 받아 옛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맞서 싸웠다.

하지만 소련군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한 뒤 미국은 등을 돌렸고 대다수 아랍 민병대원들은 배신감을 느꼈다.

빈 라덴은 곧 미국의 '악마' 로 변신했다. 아프가니스탄전에 참전한 아랍인들은 국제사회의 외톨이가 돼 증오와 노여움을 미국으로 돌려 새로운 성전으로 풀기 시작했다.

많은 참전 아랍인들은 광신도가 되어 조국으로 귀환해 아프가니스탄에서 CIA에게 배운 것들을 응용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이슬람그룹들을 훈련시켰고 이 그룹들은 전체 아랍사회를 마비시키고 경제를 피폐하게 만들었다. 이집트.알제리 등 아랍 여기저기서 수천명의 시민들이 학살당했다. 최근에도 알제리에서 학살이 벌어졌다.

지난 수년간 미국.영국 등 서방세계는 아랍국가의 지도자들에게 각국에 거점을 둔 테러조직을 인도하도록 요구하고 있으나 아무런 성과를 얻지 못했다. 그러는 동안 민주적이고 자유를 추구하는 이슬람 온건파들의 세력이 약화되고, 무력을 앞세우는 아프간계 이슬람그룹이 득세해 대립양상을 보이고 있다.

93년 발생한 세계무역센터 지하 주차장 폭발사건 때까지만 해도 미국은 아랍계를 위협의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당시 사건의 주모자로 지목된 이집트 무장단체의 지도자 셰이흐 오마르 압둘 라만은 현재 미국에서 종신형을 살고 있다.

그후 사우디아라비아 주둔 미군과 아프리카지역 주재 미국 대사관들은 아랍계의 공격대상이 됐다. 미국은 반테러 연합전선을 전세계에 촉구하고 있다. 이에 대해 아랍세계는 심하게 반발하고 있다. 서방세계가 아랍권과 대립하게 된 첫째 이유는 이런 아랍권의 공격성을 테러리즘과 연관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 지난 수십년간 아랍인들은 테러에 시달리고 있다. 아랍의 지도자들은 반테러의 선봉에 서고 있다. 이는 인류의 '도덕적 정의' 의 실현이라는 측면도 있지만 어떤 면에선 정권의 장래를 위한 정책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아랍국가들은 과거 사담 후세인을 지지하지 않은 것 처럼 미국과도 연대할 수 없는 입장이라는 것이다. 이스라엘측이 팔레스타인인에게 자행하고 있는 무력공격이 오늘날 아랍국가들이 자행하는 테러에 비해 결코 정당하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이 빈 라덴 문제를 거론할 때마다 아랍국가들이 팔레스타인 문제를 들고 나오는 가장 큰 이유다.

반테러리즘 전략은 일방적인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 서방은 이슬람권 시민들을 무차별적으로 테러범으로 의심해서는 안되며 아랍국가들에게 국민을 억압하도록 요구해서도 안된다. 이러한 행위는 테러행위 가담자에 대한 동조를 조장하는 결과를 낳을 뿐이다.

뉴욕 테러 일주일 전에 남아공의 더반에서 열린 유엔인종차별철폐회의를 비웃은 사람들은 다시 한번 생각을 해야한다. 억압받고 소외된 사람들의 불만을 듣는 것이 곧 테러범에 동조하는 사람을 줄이는 길이다.

마르완 비샤라 <파리 아메리칸대 교수.iht 9월 21일자 칼럼>

정리=박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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