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명수배 비리군수 사진 지워달라 민원 넘쳐 결국 삭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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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당진군청 홈페이지 캡처

“민종기 군수의 얼굴 사진을 빨리 삭제해주세요. 아주 부끄럽습니다.”

충남 당진군청은 27일 군청 홈페이지를 손봤다. 민종기 군수의 사진과 약력을 뺐다. ‘군민 여러분을 위해 두발로 뛰겠습니다’라는 문구도 함께 사라졌다. 민 군수는 현재 잠적 중이다. 지명수배된 상태다. 업체로부터 뇌물을 받고 10억원이 넘는 비자금을 관리한 사실이 최근 감사원에 적발되자, 24일 위조 여권으로 해외 도피를 시도하다 여의치 않자 공항에서 도주했다.

이런 조치를 취한 것은 군청에 쏟아진 항의 때문이었다. 보도 직후 군청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는 “군수가 창피해 견딜 수가 없다”는 글이 쏟아졌다. 수십억원대 비자금을 조성한 것도 창피한데, 공항에서 ‘줄행랑 쇼’까지 했다는 것이다. 군민들은 홈페이지에서 “삼십육계 줄행랑이 웬말인가, 이런 코미디가 없다”“두발로 뛰겠다더니 두발로 숨어버렸다”며 허탈해했다.

군수의 위조 여권 제작을 부하 직원들이 도왔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군청 전체에 대한 조롱 글도 올라왔다. “여기가 당진군수가 애용한다는 위조 여권 전문사업소인가요?(정우재)”“위조 여권은 군청 무슨 과에서 만드나요?(김금자)”라는 등의 비아냥 섞인 질문이었다.

군수의 비리 때문에 당진군 전체가 낙인찍힐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당진군 출신이라는 최세종씨는 “외지인에게 비춰지는 당진의 이미지가 뇌물ㆍ부패가 될까봐 두렵다. 군수가 당진 발전은 커녕 망신만 시킨다”고 비판했다.

자연히 홈페이지에 올라가 있는 군수 소개 글도 제발 내리라는 민원도 많았다. “그의 얼굴이 아직도 당진군 홈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다는 사실이 어이없다(문준)” “형이 확정되지 않았다지만, 죄없는 사람이 공문서 위조해서 도망갔겠냐(신영식)”는 등의 내용이었다.

결국 27일 오후 6시쯤 군청은 군수 사진을 내렸다. 총무팀 이해선 팀장은 “하루 종일 항의 전화가 와 군수 사진을 내리기로 했다”며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는 입장을 어떻게 군민에게 전달할 지 고심 중”이라고 말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민선 4기로 선출된 군수 86명 중 지난 15일까지 공직선거법 위반, 뇌물수수, 인사 비리 등으로 기소된 군수는 46명에 달한다. 직위를 상실한 군수는 해당 홈페이지 소개란에서 삭제되지만, 기소 중인 경우엔 여전히 홈페이지에 사진이 노출돼 있다. 형이 확정되기 전까지는 ‘직무 수행 중’이기 때문에 군수 소개가 틀린 정보는 아니다.

실제로 공사 업체로부터 1억9000만원을 받고 22일 구속된 김충식 전남 해남군수는 해남군청 홈페이지에서 밝게 웃는 사진으로 “여러분 환영합니다”라는 인사를 건네고 있다. 16일 같은당 지역구 이범관 의원에게 공천 헌금 2억원을 건네다 현행범으로 붙잡힌 이기수 경기 여주군수도 홈페이지 첫 화면을 장식하고 있다. 여주군청 관계자는 “군수님이 잡히고 나서 경황이 없어 사진을 내리지 못했다”며 “군민들이 강하게 요구하면 고려해보겠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지자체장의 비리가 발각될 경우, 해당 지자체 주민들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경고한다. 서강대 이현우(정치외교) 교수는 “(비리 사건이 터지면) 실질적으로 군수 역할에 공백이 생길 수 밖에 없고, 군민에게 피해가 가게 된다”며 “책임감을 느낀다면 자진해서 소개를 내리고, 군민에게 예의를 갖춘 해명을 올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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