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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발 테러 쇼크… 세계경제 먹구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미국의 '경제대통령' 으로 불리는 앨런 그린스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장은 월가가 테러의 주목표물이 됐다는 보고를 받고 11일 서둘러 귀국항공편을 찾았다.

그는 전날 스위스 바젤에서 열린 국제결제은행(BIS)회의에 참석한 뒤 이날 미국으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그러나 비행기가 뜨지 못하는 바람에 12일에야 출발할 수 있었다.

마침 폴 오닐 미 재무장관도 방일 중이다. 오는 14일까지 도쿄(東京)에 머물 예정이었던 그는 일정을 변경, 12일 귀국길에 오른다고 밝혔으나 어떤 비행편을 이용할 지에 대해선 공개하지 않았다.

뉴욕 세계무역센터를 순식간에 날려버린 이번 테러는 가뜩이나 불안하던 세계 경제에 또 하나의 비보(悲報)임에 틀림 없다.

성장 둔화세가 예상보다 길어지고 있는 미 경제에 경기침체(recession)를 안겨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미국 웰스파고 은행의 손성원 부행장은 "미국 경제는 그동안 침체와 회복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했으나 이번 사태로 침체 쪽으로 기울 가능성이 크다" 고 말했다.

이에 따라 선진국 정책 당국자들의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다.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인 일본의 중앙은행은 12일 2조엔이 넘는 돈을 시중에 풀기 시작했다. 유럽중앙은행(ECB)도 "국제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6백20억달러를 방출할 것" 이라고 발표했다.

FRB는 로저 퍼거슨 부의장의 주도로 비상대책팀을 구성했으며, 그린스펀과 긴밀한 연락을 취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FRB가 다음달 2일 정례회의 이전에 금리를 낮출 가능성이 크며, 인하폭은 0.5%포인트가 유력하다고 내다봤다.

이 사건이 향후 세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가늠하기 위해 전문가들은 10년 전 걸프전 당시 상황과 비교해 보고 있다.

그러나 최근 미국 경제의 소비활동 마저 둔화되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그때보다 우려되는 측면이 많다고 말한다.

미국 본토가 공격당했다는 심리적 위축이 경기회복세를 더욱 더디게 할 수 있다는 것이 앨런 블린더 프린스턴대 경제학 교수의 시각이다.

일본이 10년 이상 불황국면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독일을 비롯한 유럽 경제도 최근 둔화조짐이 뚜렷한 가운데 이런 일이 터진 것도 불행이다. 세계 경제의 동반침체 가능성을 크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주식시장이 큰 피해를 입었다. 12일 도쿄증시는 6% 이상 떨어져 17년 만에 10, 000엔선이 무너졌다.

한국 증시의 낙폭은 이보다 배 가까이 높은 12%였다. 유럽 증시도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실물부문에서도 피해가 나타나고 있다. 포드와 크라이슬러자동차는 11일과 12일 오전 공장 문을 닫았다.

전문가들은 상당수 비행편이 결항되고, 디즈니랜드 등 테마공원들도 일시 폐쇄함에 따라 관련산업에도 주름살이 번져가고 있다고 말했다.

8월 실업률이 전달보다 0.4%포인트나 높은 4.9%를 기록한 마당에 이런 악재들이 겹칠 경우 3분기 미 성장률은 마이너스를 기록할 가능성이 있다는 게 현지 애널리스트들의 분석이다.

주정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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