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6세대 번역가들 인문학 시장 이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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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번역.출판' 을 전업으로 하면서 새로운 유형의 인문학 지식생산 그룹이 부상하고 있다. 과거에 지식생산을 주도한 것은 강단 아카데미즘. 그러나 이런 생산 메커니즘은 최근 외적 환경의 변화로 위협받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학부만 졸업했거나 대학원 과정을 포기한 젊은 번역가 3세대들이 출판을 통해 인문학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이미 번역가들이 인문학의 대중화와 공급에 기여해온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으로』(열린책들)를 번역했고 신화연구자로 널리 알려진 이윤기씨는 나이나 활동연대가 가장 앞선 1세대.

제레미 리프킨의 『소유의 종말』(민음사) 등을 번역한 이희재씨,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열린책들)를 번역한 이세욱씨, 페트릭 쥐스킨트의 『좀머씨 이야기』(열린책들)를 번역한 유혜자씨 등은 인문학 베스트 셀러를 만들어 낸 대표적인 2세대들이다.

개별적으로 번역.연구작업을 해온 1.2세대와 달리 3세대(표 참조)는 나름의 집단적 지향성을 형성해가고 있다는 점이 특징. 비록 전공과 직업은 다양해도 공통적으로 전공의 폐쇄성, 사제간 권력관계의 경직성, 사회적 요구에 대한 외면 등에 대해 비판적이면서 학제간 연구를 통해 새로운 인문학의 가능성을 탐색하고자 한다. '기존 아카데미즘이 지식생산의 한계에 이르렀다' 는 것이 그들의 진단이다.

그렇다고 이들이 과거의 '동인' 처럼 동일한 이념으로 무장된 것은 아니고 그것을 원하지도 않는다. 지금은 오직 각자 관심에 따라 책을 읽고 현재 필요한 책을 번역해 우리 지식사회에 나름대로 개입하고자 한다.

그리고 출판.번역 사이트 (http://www.kungree.com)에 서평과 글을 올리고 의견을 나누고 있다. 그러나 이윤기씨처럼 앞으로 자신의 전문분야에서 새로운 인문학 생산을 주도할 욕심도 감추지 않는다. 어렵사리 이들을 모아 집단적으로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 스스로 대안이라 생각하나.

"감히 대안그룹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거꾸로 가는 사람들' 이다. 인문학을 하겠다고 나선 우리가 고리타분해 보일지 모르나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는 우리의 눈에는 그렇지 않다. "

- 인문학의 위기란 말에 대해선.

"인문학 위기는 인문학을 하는 사람들과 제도의 위기일 뿐이다. 다른 곳에서 인문학이 움트고 있고 그 하나의 가능한 대안을 찾고자 한다. 지금까지 어느 한 테마가 뜨면 모두 그쪽으로 몰려가는 경향이 있다. 사실 다른 것도 있다. 아직도 우리 사회는 다양성이 매우 부족하다. 자기 중심의 다양성은 무의미하다. 다양한 인문학 분야에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이 우리의 특징이다. "

- 인문학으로 무얼 할 수 있나.

"우리 모두 386세대의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기존의 계몽은 주로 대학을 통해 이뤄져왔고 그 내용도 주로 정치적 계몽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정치적 계몽이 아닌 다른 방식의 계몽을 꿈꾸고 있다. "

- 다른 방식의 계몽이란.

"지식.전문과 대중을 연결하는 새로운 방식인데, 그것은 계몽의 중요한 한 방법이다. 가령 문장 하나도 서비스 정신을 갖고 번역해야 한다. 외국의 경우 학자든 전문가든 대중과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그렇지 못하다. 특히 어떤 책이나 주제에 대해 필자를 찾을 수 없는 경우가 많다. "

- 문학 전공자가 없는데.

"1970, 80년대와 달리 이제 문학은 시대적.지적 보편성을 담아내지 못한다. 미국에서도 테크노 스릴러가 장악하고 있다. 앞으로 전문성은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그러나 문학은 이를 담아낼 수 없다. "

김창호 학술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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