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으로 세상보기] 인문학과 생명과학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동물복제, 배아간세포, 인공지능, 사이보그 휴먼 등 각종 생명공학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특히 지놈프로젝트 연구결과 인간의 소프트웨어가 규명됨에 따라 미지의 영역이 조금씩 밝혀지고 있다. 혹자는 앞으로 50년이 걸려야 인간의 기본 구도를 이해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지만 그간 과학의 발전 속도를 보면 10년 내에도 많은 것이 밝혀질 가능성이 크다.

생명윤리 논쟁이 활발하지만 큰 틀에서 보면 균형이 잡혀 있지 않은 듯하다. 인간복제나 생식세포 조작과 같은 것들은 자극적으로 들리지만 기술로도 먼길을 가야 하고 찬반이 비교적 명확한 부분들인데 열을 내어 관심을 가지는 반면, 실생활에 사용될 가능성이 크고 구체적으로 문제를 야기할 소지가 있는 많은 부문은 조용히 지나가고 있다.

이러다 보니 세계 최고의 임신중절 국가에서 강도 높은 생명윤리법(안)이 만들어지고, 인간 복제 한다는 외국인 사술가(邪術家)의 장난에 시민단체의 소중한 에너지가 낭비된다.

지난해 미국에서 있었던 '선택적 임신' 의 경우는 부모가 불치성 유전병에 걸린 6세 여아 '몰리' 를 구하기 위해 체외수정을 하고 유전병에 걸리지 않은 수정란을 선택한 것은 물론, 한 걸음 더 나아가 몰리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세포이식이 가능한 수정란을 선택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동생 '아담' 이 태어나자 (어차피 버려질)탯줄의 간세포를 몰리에게 전달한 것이다. 이미 태어난 언니를 위해 동생을 선별적으로 '만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지놈연구는 지금은 극단적인 것 같지만 앞으로는 가능할지 모르는 각종 시나리오를 만들어내고 있다. 인간의 애증에 대한 생화학.생리학적 근거가 밝혀져 연구결과가 심리 조절 혹은 조작에 활용된다.

동성연애에 대해 생물학적 배경이 있음이 밝혀져 이들에 대한 차별이 전면 금지되거나 교정 노력이 시도된다. 반사회적 행동을 규정하는 유전자 세트가 발견돼 그들을 교정하거나 임신중절을 강요할 수 있다.

어떤 10대 소년이 55세에 대장암으로 사망할 확률이 70%임이 밝혀졌다. 환자에게 알릴 것인가□ 숨긴 채 결혼을 하도록 해야 하나? 보험회사가 이를 알 권리가 있을까? 보험수가는?

앞으로 30년쯤 후에는 '인간이란 무엇인가' 에 대한 근본적인 개념이 흔들리게 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의료보험.임신중절.사람차별.노인정책 등 사회 모든 분야에서 일대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많은 이들은 인문학이 큰 위기를 맞고 있다고 이야기하지만 실제로는 성수기를 앞두고 있다. 20세기 사상의 회오리 바람을 마르크스와 레닌이 일으켰듯이 21세기 사상은 과학과 기술, 특히 생명과학에 의해 큰 영향을 받을 것이다.

문제는 일반 시민들은 물론 인문학자들의 과학 기술에 대한 이해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관계로 적절히 대처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정부는 관련 인문학에 많은 투자를 하여 이들이 우리 환경에 맞는 대안을 제시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지금의 과학기술 발전은 활시위를 떠난 화살과 같다. 일부 자연론자.환경론자는 '그런 연구는 하지 말자' 는 식의 태도를 가지고 있으나 세계 속의 한국이 '섬' 처럼 고립돼 남을 수는 없다. 하루 빨리 생명과학자.인문학자.사회과학자.종교가들이 모여 다가오는 대변화를 맞을 채비를 서둘러야 할 것이다.

金善榮 <서울대 교수.유전공학>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