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합리한 근소세 징수] 미리 뗀 세금 이자도 없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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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소득 1백% 완전 노출, 매달 월급봉투를 받을 때 바로 소득세 원천징수, 생활유지용 비용 공제 없음, 빠뜨린 연말정산에 대한 수정 권한 없음…. "

흔히 '유리알 지갑' 으로 불리는 봉급생활자의 세금에 대한 불만이다. 자영업자처럼 국세청에 소득을 절반 정도(조세연구원 분석치)만 적당히 신고할 수도 없고 올해 소득에 대한 세금을 다음해 5월까지 미룰 수도 없다. 전화료.인건비는 물론 웬만한 비용을 공제받지도 못한다.

◇ 징수 제도상 문제=국세기본법에서 보장한 '잘못 신고.납부한 세금을 2년 안에 수정할 기회' (경정청구권)를 봉급생활자에게는 인정하지 않는다. 한국납세자연맹(김선택 회장)은 국세청이 최근 '소득세를 원천납부한 근로소득자들은 5월에 종합소득세 확정신고를 하지 않으면 더 이상 경정청구를 할 수 없다' 고 예규를 마련한 데 대해 이의신청을 내기로 했다.

납세자연맹은 소득세법(제73조)에서 봉급생활자의 연말정산을 종합소득세 확정신고로 간주하면서도 국세청이 확정신고 사실 여부에 매달려 법 취지에 어긋나는 해석을 했다고 주장했다. 김선택 회장은 "지난해 말 신설된 대학원 학비 공제처럼 홍보 부족으로 회사도 공제 대상인 줄 모르는 경우도 있는데, 나중에 수정 신고.환급받을 수 있는 기회마저 제한한다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 고 말했다.

또 매해 1월부터 봉급에서 세금을 떼는 봉급생활자들은 이듬해 5월 종합소득세 신고를 하는 사업자보다 최장 15개월 먼저 세금을 내고 있다. 이같이 미리 내는 세금에 대한 이자가 연간 소득세 납부액의 3.7%에 이른다고 납세자연맹은 강조했다.

구재이 세무사는 "봉급생활자들은 연말정산을 통해 환급받으면 공돈이 생긴 것처럼 좋아하지만 실제로 더 낸 세금을 한참 지난 뒤 이자도 없이 돌려받는 것에 불과하다" 며 "정부가 이에 따른 공제를 추가로 해주거나 이자분만큼 매달 원천징수하는 세금을 적게 매겨야 한다" 고 주장했다.

고려대 이만우 교수는 "정부가 세제를 바꿀 때마다 세율이나 공제한도 확대 등에만 신경쓰지 말고 불합리한 징세 제도를 개선하는 데에도 눈을 돌려야 한다" 고 말했다.

◇ 많건 적건 공평한 세금을=자영업자 가운데 소득세를 한푼도 내지 않는 사업자의 비중이 60%에 이른다. 봉급생활자 중에서도 일괄적으로 빼주는 공제가 많아져 면세자가 갈수록 늘고 있다.

납세자연맹 金회장은 "해마다 소득세 징수액은 늘어나는데 세금내는 사람은 갈수록 줄어든다" 면서 "이는 내는 사람만 자꾸 더 내는 꼴" 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봉급생활자들이 원하는 것은 극빈층에게까지 지나친 세금 부담을 지우자는 것이 아니라 국민 모두가 소득과 씀씀이에 맞게 공평한 세금을 내자는 것" 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봉급생활자의 면세점(4인 가족 기준)은 계속 높아져 올해 1천3백17만원에 이르렀고 내년에는 1천3백92만원으로 상향 조정될 전망이다. 이같이 면세점이 높아지자 상용 근로자 중 세금을 내지 않는 근로자의 비율은 임시.일용직 근로자를 제외하고도 1996년 36%에서 지난해 46%로 높아졌다.

윤건영 연세대 교수(재정학)는 "과세 기반을 넓히기 위해 면세점을 낮춰야 하지만, 이것이 어렵다면 면세점을 동결해서라도 실질적으로 면세점을 내리는 효과를 꾀해야 한다" 고 말했다.

납세자연합회 김종식 세무사는 "최근 개업한 변호사.의사.회계사 등 고소득 전문 직종을 보면 회사.병원에 고용돼 월급을 받을 때에 비해 소득세가 절반 수준으로 줄어든다" 면서 "차라리 자영업자와 봉급생활자간 소득세 체계를 분리해야 한다" 고 주장했다.

◇ 외국에선 기본비용 공제=미국.독일.프랑스 등에선 봉급생활자가 직장을 다니는 데 쓴 생활비.주택구입비 등 웬만한 비용을 공제받을 수 있다. 미국에선 전근 비용이나 출퇴근 비용, 협회 가입비, 교육훈련비 등 직업을 유지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공제 대상이다.

도난 피해는 물론 자신의 도박으로 인한 손실도 공제받을 수 있다. 대부분 주요 거래가 수표나 신용카드로 이뤄지는 등 거래가 투명해 비용 증빙이 쉬운 점도 이런 제도를 가능하게 하고 있으며, 개인사업자도 소득을 숨기기 어렵다.

외국은 또 저소득 근로자에 대해 완전 면세하는 경우가 적고, 최저세율도 상대적으로 높다. 일본(10%).대만(6%)만 한국(10%)과 같거나 낮은 편이고 미국(15%).영국(20%).프랑스(12%).독일(19%) 등은 한국보다 높다.

이효준.이상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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