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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에 집착하는 인간의 욕망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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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호 08면

1 플로라와 바보들의 수레 (1640), 헨드리크 포트 (1580-1657) 작, 61×83㎝, 프란츠 할스 박물관, 하를렘

지난 글에서 네덜란드 튤립 투기자들을 멍청한 원숭이로 묘사한 1640년께의 풍자화를 소개했었다. 여기, 1637년 튤립 거품이 붕괴된 직후에 네덜란드 화가 헨드리크 포트(1580~1657)가 그린 또 하나의 풍자화가 있다(사진 1).

문소영 기자의 명화로 보는 경제사 한 장면 <5> 해골과 튤립이 말해주는 것

이 그림에서는 돛을 단 커다란 수레가 바람을 안고 해변을 달려간다. 수레 위 높은 자리에는 로마 신화 속 꽃의 여신 플로라가 앉아 있다. 여신의 품에는 네덜란드 부유층 사이에서 명품으로 각광받은 희귀한 줄무늬 튤립이 가득하다. 수레의 맨 앞에는 얼굴이 앞뒤로 하나씩 달린 여자가 앉아 있는데, 이 그림을 소장한 프란츠 할스 박물관에 따르면 헛된 희망을 상징한다고 한다. 아마도 그 헛된 희망이란 ‘튤립 값이 지금까지 올랐으니 앞으로도 오르겠지. 지금 사서 팔면 떼돈을 벌 수 있어!’일 것이다.

그 뒤로 어릿광대 복장을 하고 머리 양쪽에 튤립을 꽂은 남자 세 명이 있다. 박물관 관계자는 세 남자는 헛된 희망과 함께 튤립광풍을 일으킨 원동력인 탐욕과 허풍을 상징한다고 말했다. 특히 배 끝에 앉은 남자는 ‘누구 누구가 튤립으로 떼돈 벌었다더라’ 하는 과장 섞인 소문을 떠벌리면서, 그 말에 솔깃해서 수레를 따라오는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고 있다. 이 사람들은 네덜란드 하를렘시의 직공들로서 생업도 팽개치고 수레를 뒤쫓고 있는 중이다.

2 바니타스 (1602-1674), 필리프 드 샹파뉴 (1602-1674) 작, 판자에 유채, 28 x 37 ㎝, 테세 박물관, 르망 3 바니타스 정물이 있는 자화상 (1651), 다비드 바일리 (1584-1657) 작, 목판에 유채, 89.5 x 122㎝, 라켄할 미술관, 레이덴

이 그림은 꽃 거래의 중심 도시였던 하를렘의 튤립광풍을 잘 요약해서 보여준다. 17세기 국제무역과 직물공업의 중심지로서 ‘황금시대’를 구가하고 있던 네덜란드의 직공이라면 벌이가 나쁘지 않았을 텐데 왜 그들은 튤립 투기에 뛰어들었을까? 그것은 팽창하는 가격 거품이 일확천금을 바라는 인간의 욕심을 부추겼기 때문일 것이다. 1630년대에 희귀한 줄무늬 튤립은 몇천 플로린에 거래되었고, 특히 거품이 절정에 달한 1636년 말에는 자고 나면 몇백 플로린씩 가격이 뛰었다. 그 시기에는 이런 대화가 오갔을지도 모른다.

“우리 옆집 사람이 소 열 마리 판 돈 1200플로린을 갖고 튤립 한 뿌리 샀거든. 그거 보고 미쳤다고 생각했는데, 글쎄 그걸 석 달 만에 1500플로린에 팔았대.”
“뭐? 죽어라 직공 일 해도 1년에 200플로린을 벌까 말깐데 나도 때려치우고 튤립 장사나 해볼까.”

당시 목수나 재단사 같은 기술직의 연평균 소득이 150~300플로린 정도였다는데, 누구는 그냥 앉아서 튤립만 사고 팔아서 그 몇 배를 벌어들인다니 사람들이 눈이 뒤집히지 않겠는가! 그래서 다양한 직업의 사람들이 너도나도 튤립 거래에 뛰어들었다. 이렇게 되자 1634년에는 하를렘을 포함한 몇 곳에 튤립 거래소까지 생겼다.

튤립 구근 실물이 거래되는 시기는 튤립이 피었다 진 이후인 6월에서 구근을 심는 시기인 9월 사이로 한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아직 땅 속에 있는 구근을 계약서만으로 거래하기도 했다. 일종의 선물(先物) 거래인 셈이다. 당시 그런 거래를 ‘바람장사(windhandel)’라고 불렀는데, 이 말은 포트의 그림 속, 바보들의 수레를 미는 바람과도 잘 어울린다.

이런 튤립 투기자들 모두가 튤립 값이 영원히 오르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이 계속 사는 것을 보며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얼마 동안은 더 오를 거야. 이걸 사서 내리기 직전에 팔아야지.’ 하지만 거품이 언제 터질지, 즉 가격 폭락이 언제 시작될지는 그야말로 신만이 아실 일이다. 투기가 곧잘 아슬아슬한 ‘폭탄 돌리기’에 비유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1637년 1월 한 달 동안 튤립 값은 마지막 불꽃이 타오르듯 미친 듯이 올랐다. 그러나 곧 2월에 저 포트의 그림 속 ‘바보들의 수레’가 바다에 처박히는 날이 왔다. 몇몇 사람들이 튤립을 팔려고 내놓았으나 오를 대로 오른 가격 때문에 더 이상 사려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자 불안을 느낀 그들은 값을 낮추어서라도 팔려고 했다. 그들의 불안감이 순식간에 다른 튤립 거래자들에게도 퍼져 나갔고 너도나도 튤립을 내놓기 시작했다. 튤립 값은 마구 내려가 이틀 만에 무려 95%나 폭락했다. 당황한 사람들은 투매를 시작했고 덕분에 가격은 더욱 빠른 속도로 떨어졌다.

이 상황에서 파산한 사람들이 무더기로 나올 수밖에 없었고, 이들의 소비가 줄다 보니 생산도 위축되어서 결국에는 튤립 투기에 가담하지 않은 사람들까지 피해를 보게 되었다. 이런 악순환 속에서 네덜란드 경제는 한동안 후유증을 겪었다. 버블 붕괴가 무서운 것은 이렇게 경제 전체에 치명타를 가하기 때문인 것이다.

튤립광풍이 휩쓸고 간 한 세대 후에 플랑드르 출신의 프랑스 화가 필리프 드 샹파뉴(1602~1674)는 튤립이 해골과 모래시계와 함께 등장하는 섬뜩한 그림을 그렸다(사진 2). 이 그림은 바니타스(Vanitas) 정물화의 일종으로, 바니타스는 ‘헛됨’을 의미한다. 이 장르의 정물화는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라고 외치는 해골과 시시각각 죽음이 다가오고 있음을 상기시키는 모래시계와 함께 여러 사치스러운 물건들을 배치해 죽음 앞에서는 부귀영화며 감각적인 쾌락도 다 부질없다는 메시지를 던지는 것이다.

보통 바니타스 정물화에는 네덜란드 화가 다비트 바일리(1584~1657)의 작품(사진 3)처럼 해골과 모래시계 외에도 상징적인 사물이 더 많이 등장하곤 한다. 인간의 삶이 잠깐이고 덧없다는 것을 알려주는 비누방울과 꺼진 초, 젊음이 오래 가지 못한다는 것을 나타내는 시든 꽃 등은 바니타스 정물화의 단골소재다. 그밖에 금화와 진주·공예품 등은 부귀를, 악기·담뱃대·조각·책 등은 감각적 쾌락과 교양을 상징하는데, 이들은 모두 죽음으로 덧없어질 허영의 사물들이다.

그런데 샹파뉴의 그림에는 이런 사물이 하나도 없고 오로지 튤립 한 송이가 있을 뿐이다. 샹파뉴는 한 세대 전 튤립광풍의 이야기를 듣고 그 모든 부와 교양과 허영의 상징으로 튤립 하나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튤립 버블은 다 먼 나라의 이야기일까. 우리나라는 벌써 몇 년째 부동산 버블 논란에 싸여 있다. 물론 주택은 튤립과 달리 필수재이며, 단지 투기로 값이 올랐다고만 볼 수 없다. 하지만 최근 노무라증권 리포트를 포함한 여러 분석은 한국의 경제 상황이 1980년대 일본의 부동산 버블 형성 시기와 비슷하게 전개되고 있다고 경고한다.

80년대 일본의 금리는 낮게 유지되었고 부동산 가격은 55년부터 꾸준히 올랐기에 일본인들은 부동산이 더 오르리라는 기대에 부지런히 은행에서 돈을 빌려 부동산을 샀다. 그 바람에 85~90년 도쿄를 포함한 6대 도시 평균지가는 3.7배 급등했다. 그러자 일본 중앙은행이 버블 확장을 막기 위해 정책 금리를 올렸다. 이자 부담을 감당하지 못한 사람들이 다시 부동산을 팔면서 91년 이후 10년에 걸쳐 집값은 60% 폭락했다. 덕분에 일본 경제는 10년 불황의 늪에 빠졌다.

현재 한국의 주택담보대출을 포함한 전체 가계부채는 사상최대 수준이며 그 국내총생산(GDP) 대비 비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높다. 물론 주택담보대출 규제 강화 등 예방조치를 해놓았고 모든 상황이 일본과 같은 것도 아니다. 하지만 경고는 흘려 듣지 않는 것이 좋다. 샹파뉴의 그림 속 해골과 튤립의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할 것처럼.


영자신문 중앙데일리 문화팀장. 경제학 석사로 일상 속에서 명화와 관련된 이야기를 찾는 것이 큰 즐거움이다. 관련 저술과 강의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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