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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진혁 칼럼] 헤어질 때가 됐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지난해 총선 때 DJ정부를 공격하던 JP와 자민련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이번에 임동원(林東源)파동을 보면서도 이것이 곧 DJP공조의 붕괴라고 쉽게 믿긴 어려울 것이다.

총선때 그토록 비난하고도 다시 공조로 돌아선 것처럼 이번에도 다시 이런저런 명분을 붙여 얼마든지 또 손잡을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지경에 이르러서까지 DJ와 JP, 민주당이나 자민련 모두 더 이상 국민을 속이는 일은 그만 둬야 할 것이다. 공조를 유지해온 지난 3년반을 생각하거나 두 정당 스스로의 앞날을 위해서라도 그런 공조를 더 이상 끌고가서는 안된다.

생각해 보자. DJP공조가 과연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는가. 지난 3년반 우리 정치는 격심한 정쟁과 만성적 갈등.대립만 있었을 뿐 타협과 상생정치는 실종된 상태였다.

*** 힘의 정치 뒷받침한 共助

원래 소수파정권은 불가피하게 다수파인 야당과 대화.타협으로 공존하는 기술을 익혀야 하지만 DJ정권은 JP와의 공조 아래 수(數)의 정치, 힘의 정치를 강행해 왔다. 그런 점에서 DJP공조는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연습.발전시킬 모처럼의 기회를 놓치게 하고 우리 정치를 역행(逆行)시키는 데 큰 구실을 해 온 셈이다.

뿐만 아니라 DJP공조는 국민 의사의 정치반영을 왜곡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보수원조' 를 자처하는 자민련을 찍은 표는 보수성향의 표라고 봐야 한다. 그런 자민련이 DJ정권과 연대함으로써 엉뚱하게 보수표가 진보파에 힘을 보태는 결과가 된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자민련 지지표의 의사를 묵살한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보수.진보에 관한 전체 국민의 뜻이 국정에 적절한 균형으로 반영되지 못하게 하는 구조를 만든 것이다. 정당 성향으로 보면 자민련은 한나라당과 더 가깝다.

만일 두 보수세력이 함께 견제했다면 대 북한 저자세와 금강산사업의 세금지원 같은 일은 그냥 넘어가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자민련이 이런 일에 제대로 대응 못한 것은 지지자들에게 큰 죄를 지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DJP공조가 또 하나 보여준 것은 국정난맥.혼선이었다. 지난 3년동안 지분에 따른 부적격자 기용, 낙하산인사 등이 만성적으로 이뤄지고 문제가 터져도 책임을 미루는 일이 예사가 됐다. 민주당에선 걸핏하면 "공동정권의 한계 때문" 이라고 자민련을 원망하고 자민련에선 "자기들이 다 해 먹으면서…" 라는 불만이 끊이질 않았다.

결론적으로, 이런 공조를 더 이상 유지할 필요가 있을까. 임동원 파동 같은 게 없었다고 하더라도 오늘의 위기상황을 생각한다면 지금과 같은 DJP공조 체제는 당연히 일대 쇄신을 단행해야 할 판이다. 민주당.자민련 스스로도 더 이상 이런 상태의 공조는 불가능함을 확인하고 있잖은가. 그렇다면 이제 각자가 제 길을 가는 것이 옳다.

DJ로서는 공조를 깨면 재임 중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자기 정권' 을 구성하고 남은 1년반의 임기를 새 출발할 수 있다. 더 이상 '공동정권의 한계' 없이, '자민련한테 발목 잡히는 일' 없이 원대로 총리도 자기 의중의 인물을 기용하고 내각도 뜻대로 구성해 1년반 동안 소신대로 국정을 끌고 갈 수 있다. 그동안 미뤄온 국정쇄신을 위한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

민주당 소장파뿐 아니라 당 대표까지 국정쇄신.인적쇄신을 요구하는 판이다. 세상에 집권당대표와 대통령비서실이 서로 치고 받다니 그러고도 국정과 정치가 제대로 되겠는가. 차제에 일대쇄신을 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DJ가 심기일전(心機一轉)해 결단을 내릴 때가 됐다.

*** DJ '자기 정권' 구성 기회

자민련으로서도 총리와 각료를 철수시키고 '자민련다운 자민련' 으로 새 출발하는 게 좋다. 안보와 보수를 팔아 권력과 감투를 샀다는 항간의 따가운 질책을 더 이상 받아서는 자멸의 길밖에 없을 것이다. JP는 "못참을 걸 참으며 공조에 최선을 다했다" 고 했지만 장관 하나 때문에 깨질 수도 있을 만큼 그 공조는 별것 아닌 공조였다.

결국 헤어질 때가 온 것이다. DJP연대의 한쪽 산파였던 김용환(金龍煥)의원의 말이 맞다. 연대의 유일한 명분이었던 내각제가 무너진 이상 연대의 고리는 사라진 것이다.

내각제 명분이 없어진 이상 사이좋게 나눠 먹었든 으르렁대며 나눠 먹었든 '나눠먹기' 밖에 뭐가 있었는가. 이런 연대가 정치발전에는 물론 후세교육을 위해서도 도움이 안됨을 충분히 경험했다. 헤어질 때가 됐다.

송진혁 <논설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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