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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첼로와 케챱’ 탄탄한 극작술 돋보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7면

김명화(35.얼굴사진)는 연극계에서 드물게 평론과 극작을 겸하는 신예다. 1997년 삼성문예상(희곡부문)을 타며 화려하게 극작가로 데뷔했다. 평론은 대학원(중앙대)시절부터 했다.

극작가로서 그녀가 지금까지 발표한 작품은 모두 세 편. 삼성문예상 수상작으로 오태석이 연출한 '새들은 횡단보도로 건너지 않는다' (97년)는 80년대 세대와 90년대 세대간의 단절문제를 다뤘고, 지난해 김광보 연출의 '오이디푸스, 그것은 인간' 은 인간의 권력관계를 날카롭게 그렸다. 두 작품 모두 상당한 평가를 받으며 그녀는 '주목할 대상' 이 됐다.

극작가 소개가 좀 길었다. 하지만 이번 작품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이 정도의 정보는 우선 필요하다고 보았다. 그녀의 세번째 작품인 '첼로와 케' (채승훈 연출, 13일까지 문예회관 소극장, 1588 - 7890)은 앞의 두 작품에서 보여준 그녀의 탄탄한 극작술이 점차 농익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냈다. 비록 세 작품뿐이긴 해도 폭넓은 소재 탐구가 엿보였으며, 이젠 찾기 힘든 '말이 되는(있는) 연극' 의 재발견이 반가웠다.

최근 로카르노영화제 여우주연상을 탄 김호정과, 부드러운 듯하지만 선이 굵은 연기자인 남명렬이 처음 호흡을 맞춘 '첼로와 케' 은 남녀(부부)의 사랑과 엇갈림의 이중주다. 남자는 한때 첼리스트를 꿈꾸다 교통사고로 손을 다쳐 꿈을 접은 상태. 은행원인 여자는 케첩을 좋아해 그걸 듬뿍 넣은 볶음밥을 남편에게 해주길 즐기는 소시민적인 아내다.

무대가 밝아지면 둘은 양쪽으로 갈라서서 제 할 일을 한다. 남자는 발톱을 깎으며 여자를 추억하고, 여자는 양파를 썰며 '눈물' (일단은 매워서지만 남자에 대한 그리움일 수도 있다)을 흘린다. 각자에게 비춰진 조명은 둘 사이에 심상치 않은 단절이 있음을 암시한다. 무대장치도 하얀색과 붉은색으로 적절히 이분됐다. 그래도 양쪽을 연결하는 첼로의 줄은 끝장 난 부부가 아님을 보여준다.

이어 무대 전체에 불이 들어오면서 둘의 '사랑싸움' 이 엮인다. 지고한 예술을 꿈꾸며 생활인이기를 포기한 남자, 첼로곡이나 '듣는' 예술가라고 그 남자를 구박하며 사랑을 쟁취하려 드는 여자. 설정은 다소 상투적이만, 작가는 이를 긴장감 있는 말로 풀어낸다. 섣부른 코믹을 과장하지 않으면서도 적절한 때 웃음이 흘러나오는 것은, 미세한 일상을 설득력 있게 포착해낸 작가의 예민한 감각 덕이라고 하겠다.

김철리.심재찬과 함께 40대 중후반을 대표하는 연출가 채승훈(수원대 교수)은 지금까지 '햄릿머신' 등 실험적인 작품에 능했다. 그만큼 생경하고 난해한 면이 많았는데, 이번 무대를 통해 '감성 연출가' 로서의 또 다른 면모를 보였다. 개성이 강한 배우들의 모나지 않은 앙상블은 그의 장악력에서 비롯됐다.

시종 흐르는 바흐의 '무반주 첼로모음곡' (자클린 뒤프레 연주) 등 첼로연주곡은 극 전개에서 긴장과 이완의 촉매다.

둘의 갈등이 결국 잘 봉합되리라는 것을 우리는 그 음악으로 읽는다. 극 중간에 남자가 여자에게 하는 대위법 '강의' 는 복선이다. "두루마리를 이렇게 펼쳐놓은 것처럼 음악을 수평적으로 펼쳐 놓는거야. 비슷한 모티브를, 중심 모티브가 있어. 그걸 시간의 흐름 속에서 조금씩 계속 변주해 가는 거지. "

이처럼 "같은 것 같은데 다르고, 다른 것 같은데 같은 것. 그러면서 순환하는 것" 이 부부(남녀)의 사랑임을 '첼로와 케' 은 잔잔하지만 힘 있는 어조로 말한다.

정재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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