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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션 피플] 한국식물병원 임종식 원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5면

지난 3월 광주시내 한 고등학교에서 광주 동구 한국식물병원 임종식(林鍾植.69)원장을 다급하게 찾는 연락이 왔다.

잘 자라던 80~1백년된 희말라야시다 10여그루가 잎이 빨갛게 물들면서 말라 죽어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고용원들이 잡초를 제거하느라 제초제를 마구 뿌리는 바람에 나무들이 농약에 중독된 것.

임학계에선 제초제로 인한 나무 고사(枯死)는 뚜렷한 해결 방법이 없는 것으로 전해져 마지막으로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나무박사' 로 통하는 임원장은 현장에서 나무를 진단한 뒤 자신이 개발한 미생물 해독제를 뿌리에 주사했다. 2개월만에 농약에 중독된 나무는 잎에 생기를 되찾았고 지금은 병세를 훌훌털고 푸르름을 맘껏 뽐내고 있다.

임박사는 칠십 평생 병들거나 시한부 삶을 사는 나무에 자신이 개발한 미생물로 새생명을 불어 넣고 있다.

그의 치료법은 발상과 방법이 아주 특이해 나무 외과수술계에선 재야로 분류되지만 현장에서는 인정을 받고 있다.

고향(전남 무안군 삼향면)에서 초등학교를 다닐 때 일본인 교장선생님이 나무와 한 평생을 살도록 이끈 스승이었다.

그는 임박사를 수양아들로 삼아 일본에 유학까지 보내 중학교와 동경대학 식물학과에서 나무 공부를 할 수 있도록 배려해줬다.

1960년대 초 귀국한 임박사는 국내 모 대학에 재직하면서 20여년 동안 나무 회생법 개발에 매달려 식물의 열매.뿌리.줄기.잎 등을 배합.추출한 미생물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70년 중반에 동경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기도 했다.

임박사의 미생물 공법은 나무 치료 업체에서 일반적으로 실시하는 콘크리트.아스팔트.목재와 철못.우레탄 등을 이용하는 외과수술과는 전혀 다르다.

썩은 나무 부위를 솎아내고 미생물이 섞인 톱밥.황토.석고를 발라 목질부에서 뿌리와 줄기가 자라도록 소생시킨다. 미생물을 직접 뿌리에 주사하는 방법도 사용한다.

그는 "순식물성인 나무에 화학적 성분을 충전시키면 일시적인 효과는 있을지 몰라도 부패 부위가 확산되는 결과를 낳아 결국 고사하고 만다" 고 주장한다.

89년 가족과 떨어져 광주에 식물병원을 차렸다. 허름한 사무실 한 칸을 빌려 숙소와 연구실로 사용하며 자신을 부르는 곳이 있으면 어느 곳이건 달려가 나무의 고통을 덜어준다.

97년 진해 해군사관학교에서 회생 불능 판정을 받은 80년생 왕벚나무를 살려 내기도 했으며 올 봄엔 고사 위기에 처한 광주시 풍암지구 3백년생 양버들나무도 회생시켰다.

요즘은 전주와 임실을 오가며 전주~군산간 도로에 심어진 왕벚나무와 임실군이 보호수로 지정한 수령 5백~6백년 노거수 회생 작업을 벌이고 있다.

그는 미생물을 이용한 ▶노거수 외과수술 치료.복원▶제초제 중독 해독법▶노거수 원형 이식공법▶비탈면 녹화법▶음식물쓰레기 복합 비료 제조 등 6종의 특허를 출원해 놓고 있다.

임박사는 "나무와는 달리 인간은 나무에게 빚을 지고 산다" 며 "생명을 가진 묘목 한 그루라도 인간이 함부로 대해서는 안된다" 고 말했다.

광주=구두훈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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