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산은 산 물은 물 (63)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8면

63. 일주일 용맹정진

성철스님의 가르침을 받은 딸 수경(불필스님)은 태백산으로 향했다. 홍제사 인홍(仁弘)스님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초가을이었지요. 따가운 햇살이 남아 있었지만 워낙 깊은 산길이라 크게 더운 줄 모르고 쉬다 걷다 했는데, 저녁볕이 서산에 걸릴 즈음 홍제사에 도착했습니다. 멀리서 몇몇 스님들이 걸망에 산초들을 가득 담고 절로 돌아오는 모습이 어쩜 그렇게 편안해 보이는지…. "

수행에의 열정이 높은 수경에게 태백산은 안성맞춤이었다. 산 정상에 오르니 칡넝쿨이 저절로 엉켜 있고, 냇물을 거슬러 올라가 보니 도솔암도 보였다.

당시 도솔암엔 일타스님(전 원로의원 및 은해사 조실)이 머리를 기른 채 정진하고 있었다. 일타스님은 가끔 홍제사에 내려와 설법을 해주기도 했다. 마침내 동안거(冬安居.겨울철 외부출입을 하지 않고 수행에 전념하는 것)가 시작됐다.

홍제사는 인법당(법당이 따로 없고 요사채에 방 한 칸 정도를 법당으로 쓰는 집)에 집 한 채뿐인 작은 절이었다. 그렇지만 수경은 자신만의 방을 하나 가지고 싶었다. 마침 창고 삼아 사용하는 빈 방에 들어가 죽기를 각오하고 수행코자 했다.

인홍스님이 허락해주었다. 수경은 깨달음에 대한 갈망에서 '일주일 용맹정진' 에 들어갔다. 7일간 먹지도, 자지도 않고 수행만 하는 방식이다. 흔히 잠을 자지않는 정진도 용맹정진이라 하는데, 단식까지 한꺼번에 하는 용맹정진이란 사실상 목숨을 건 도전이나 마찬가지다.

"그렇게 단단히 마음 먹고 시작했는데, 이틀 만에 끝났죠. 그 일은 생각하면 지금도 너무 안타깝지요. 그 때 정말 일주일 내내 정진했다면 큰 깨달음을 얻었을 텐데…. "

이틀 만에 정진을 그만 둔 것은 용맹정진의 경험이 있던 한 스님이 "저렇게 하다간 큰 병 얻는다" "평생 수행 못하게 된다" 며 주변을 설득해 말렸기 때문이다. 창고 같은 방이라 스님들이 뭘 가져가려 들락거리기도 했다.

수경스님은 할 수 없이 다른 스님들과 함께 큰 방에서 정진했다. 주지 인홍스님을 비롯해 성우.묘경.혜춘.인성.무렴.현각스님 등 다른 비구니스님들의 정진도 대단했다. 겨울만 되면 눈으로 외부와 단절된 깊은 산 속. 스님들은 마주보며 장좌(長坐.밤에도 눕지 않고 앉아서 지새는 수행)를 했다.

"딱!"

경책(警策) 소리다. 졸음으로 자세가 흐트러지는 스님이 생기면 맞은 편에 앉은 스님이 큰 죽비로 어깻죽지를 내려치는 것이다. 맞는 사람만 아니라, 온 방의 스님들이 모두 그 소리에 정신을 챙긴다.

"정말 견디기 힘들 정도로 졸음이 쏟아지면 밖으로 나와 눈 속에서 행선(行禪.걸어다니며 참선함)을 했지요. 달빛 아래 쌓인 흰 눈에 무릎까지 쑥쑥 빠지는데…, 추운 줄도 모르고 거닐다가 배가 고프면 시금치나 생감자를 먹곤 했지요. "

당시 어렵고 힘들 때마다 수경이 머리 속에 떠올린 것은 옛 스님의 가르침이다.

'추위에 떨며 배고플 때나 망상이 있을 때, 오로지 정진 한 생각으로 하루해가 저물면 또 하루를 헛되이 보내지 않았는가?'

그렇게 겨울 한 철을 보내고 봄 햇살에 눈이 녹아 길이 드러나면 스님들은 하안거(夏安居.여름 한철 외부출입을 끊고 수행하는 것) 할 곳을 찾아 여행을 떠난다. 수경은 옥자와 함께 경북 문경 사불산에 있는 윤필암으로 갔다. 윤필암은 수행처로 유명한 암자다.

"사불산은 바위산이에요. 그런 바위산이 병풍처럼 사방을 둘러싸고 있으니 도량에 들어서면 마음 속 번거로움이 다 사라지는 듯하지요. 모든 부처님과 보살님들이 보살피는 정진도량이 아닌가 싶을 정도지요. "

윤필암에서 조금만 산을 오르다보면 묘적암이 나타난다. 고려말 나옹(懶翁)스님이 정진했던 곳이다. 나옹스님이 정진했던 곳으로 알려진 묘적암 인근 안장바위와 말바위는 천길 낭떠러지 골짜기에 걸려 있는 바위들. 졸기라도 하면 목숨이 위험한 곳이다. 수경은 나옹스님처럼 정진한다는 일념에 곧잘 바위에 오르곤 했다.

하안거가 끝나자마자 수경은 대구 성전암으로 갈 길을 서둘렀다. 아버지 성철스님은 성전암 주위에 가시나무를 둘러 외부와의 접촉을 끊은 채 몇년간 정진 중이었다. 그런 성철스님을 뵐 수 있는 날이 안거 끝낸 다음날이다. 그 때만은 문을 열어 손님을 맞았기에 수경 역시 그 날에 맞춰 성전암으로 가야했다.

원택 <성철스님 상좌>

정리=오병상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