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조소프라노 제니퍼 라모어 내한공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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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최근 몇년간 서울에서 열린 클래식 공연 중 가장 생각나는 무대는□ 음악팬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면 어떤 대답이 나올까.

아마도 적잖은 사람들이 지난해 5월 13일 LG아트센터에서 열린 소프라노 홍혜경과 메조소프라노 제니퍼 라모어(42)의 듀오 콘서트를 꼽지 않을까 싶다.

두 여성이 '연인' 역으로 사랑의 2중창을 부르는 이색적인 레퍼토리도 눈길을 끌었지만 무엇보다 메조소프라노에 대한 선입견을 단번에 불식시킨 제니퍼 라모어의 뛰어난 가창력과 흡인력이 눈부셨기 때문이다. 그날 청중들은 홍혜경이 질투를 느낄 정도로 라모어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오페라.콘서트 무대와 레코딩 스튜디오를 바쁘게 오가며 메조소프라노의 매력을 전세계 음악팬들에게 마음껏 발산하고 있는 제니퍼 라모어가 이번엔 혼자 한국 무대에 선다. 9월 22일 오후 7시30분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피아니스트 안토안 팔록(파리음악원 교수)의 반주로 들려줄 곡목은 바로크에서 현대에 이르는 다채로운 노래들. 오페라 아리아와 함께 이탈리아.프랑스.미국.스페인 가곡으로 꾸며진다. 로시니가 메조소프라노를 위해 작곡한 연가곡 '베네치아의 곤돌라 경주' , 드뷔시의 '아름다운 저녁' '로망스' '종' , 새뮤얼 바버의 가곡 '고독한 호텔' , 쿠르트 바일의 카바레송 '당신을 사랑하지 않아요' '유칼리' , 남미 작곡가들의 스페인 가곡 등을 부른다.

가장 눈길을 끄는 레퍼토리는 카스트라토(거세한 남성 소프라노)를 영화화한 제라르 코르비유 감독의 영화 파리넬리에서 흐르는 '사랑스런 신부' (헨델의 리날도)를 비롯해 '어디로 날아가리' (헨델의 헤라클레스) 등. 최근 헨델 오페라가 인기를 누리면서 지금은 사라진 카스트라토가 맡았던 역할은 메조소프라노가 아니면 가성(假聲)을 훈련시킨 카운터테너가 대신하는 게 보통이다.

메조소프라노가 남자로 분장하기 위해선 바지를 입어야 하는데 미소년 같은 얼굴에다 몸매가 날씬하지 않으면 음반 녹음은 몰라도 오페라 출연은 곤란하다. 그런 의미에서 라모어는 '바지 역할' 에 잘 어울리는 메조소프라노다.

'바지 역할' 은 카스트라토가 사라진 이후에도 여성 가수의 무대 출연이 금기시되자 메조소프라노가 바지를 입고 남자 역할을 해온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라모어는 1997년 남자 정장을 입고 시가를 물고 알 카포네 스타일로 커버 사진을 찍은 음반 '남자라고 불러주세요(Call Me Mister)' 를 내놓기도 했다.

미국 애틀랜타에서 태어난 라모어는 웨스트민스터 합창단원을 거쳐 1986년 프랑스 니스에서 모차르트의 '티토왕의 자비' 로 데뷔한 데 이어 95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무대에 섰다. 94년 텔덱 레이블과 전속 계약을 하고 헨델.모차르트.로시니.벨리니의 오페라 등 20장에 가까운 음반을 발표해왔다.

최근엔 비제의 '카르멘' 주역에도 도전하고 있다. 건강하고 충실한 목소리와 개성있는 음색을 겸비한 그는 음울한 긴장감을 자아내는 낮은 음역, 매끈하게 흐르는 중간 음역, 강력하고도 화려한 고음부 등 다채로운 음색을 자랑한다. 02-720-6633.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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